담담히 사건과 사실을 서술하고 있다. 개도국 & 아프리카 등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실상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우리 도시인들의 삶이 얼마나 '호화'스러운 것인가를 알려 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리뷰] 인간에게 있어서 불교에서 말하는 생노병사(生老甁死)는 지극히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에게 평등한 것은 분명 아니다.
병과 죽음의 문제는 인간 스스로가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가 처한 환경에 따라 충분히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좋게 말해 개발도상국인 세계의 수많은 가난한 나라들에 비해, 적어도 대한민국쯤 되면 그나마 오래 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가령 몸이 아플 경우 선진국이나 그보다는 못해도 우리나라 정도만 되어도 의료보험의 도움을 받아(미국의 경우 사적보험을 통해 해결하지만) 꽤나 마음껏(!) 병원에 갈 수도 있고, 필요한 치료도 어느정도까지는 충분히 받을 수 있다. 또한 비록 우리나라가 물부족 국가로 지명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마실물에 대한 걱정없이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있으며, 원할 때 마다 샤워도 할 수 있어 청결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점들은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하루종일 걸어야 물을 구할 수 있을 정도이며 그나마 깨끗한 것도 아니어서 마실물조차 변변찮고, 병원은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 수십km를 가야 겨우 하나 있을 정도이며, 병원비는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도 너무나도 벅차다. 그것뿐인가, 1회용으로 사용되어야 할 주사기가 계속해서 사용되며 이는 에이즈와 같은 병을 초래하기도 한다. 병 고치러 병원에 갔다가 더 큰 병을 달고 나오는 격이 아닌가!
이것뿐인가? 우리는 충분한 교육을 받아 삶이나 민주주의 등과 같은 추상적인 것들을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능력아닌 능력(?)'도 갖고 있다. 이것은 하루하루 어떻게 먹고 살아갈까 하는, 연명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들로부터 우리가 자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교육을 받기 위해 하루를 일하지 않으면 당장 그 다음날 살 것이 막막해지는 삶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먹고 마시는 문제로부터 자유롭기에, 그렇기에 가난한 세계의 사람들은 제대로 갖기 어려운 어쩌면 사치스럽기까지 한 꿈을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임을 명심해야겠다.
우리는 처음부터 소위 말하는 선진국의 생활양식을 살아온 것이 아니었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소말리아와 같은 나라와 다를바없는 심각한 최빈국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기억할 수 있는 세대는 부모세대 이상 밖에는 없다. 부모세대의 피나는 희생과 '경제 개발 5개년 계획'과 같은 효율과 거점중심의 중앙집중식 경제계발의 성공으로 우리는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배고픔과 가난, 질병 등의 고통.....
이것들은 출가하기 전 싯다르타(석가모니)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먼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을 벗어나 시야를 돌려 넓게 보아야한다. 왜냐하면 그럴때야만이 비로소 사람들(중생)의 아픔이 보이고, 또한 고통의 문제에 대한 깨달음과 해결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싯다르타(석가모니)가 왕궁을 나와 세상과 직면했을 때, 즉 자신이 누리던 것을 버리고 진정한 세상 속으로 들어갔을 때 비로소 깨달음을 얻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던 것처럼, 우리또한 우리가 누리던 것을 버리고 진정한 세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더이상 무관심한 상태로 있어서는 안된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야비한 생각도 버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경험삼아 해외로 봉사활동을 가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겠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비행기값으로 그들을 돕는 것이 더 낫지 않느냐) 혹은 우리나라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다른나라 신경쓸때냐 하는 비판들이 있을 수 있지만, 실제로 보고 느끼고 경험해보는 것이 이렇게 글로 보거나 계속해서 당위성을 언급하는 것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세상과 직면할 때, 즉 여기서는 세상의 가난과 고통을 몸소 경험하게 될 때에 우리는 머리로만이 알았었던, 또한 교육받아 당위로만 아는 나눔과 베풂, 그리고 구제를 우리 각자의 삶을 통해 제대로 실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석가모니의 깨달음이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 가슴속에 남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는 것처럼 우리 또한 인류에 대해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될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밑줄긋기]
시작하기에 앞서>
주위의 모든 사람이
진흙 같은 빵 한 조각 때문에 투쟁할 때
고상한 즐거움을 누리는게
옳다고 할 수 있을까?
- 크로포트킨
프롤로그> 원점을 바라보며
1. 목적지만 알고 있어서는 안된다.
p.16
아무런 불빛도 목표물도 없는 황야나 사막에서는 나는 두 개의 광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하나는 내가 출발한 지점에 두기 위해서이고, 또 하나는 지금 내가 있는 곳의 발밑을 비추기 위해서이다.
p.17
우리 모두는 우리가 출발한 지점을 명심하고 항상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자신의 삶의 원형, 출발한 지점의 풍경을 항상 마음의 시야에 간직하거나 적어도 지식으로나마 알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목적지만 알고 있어서는 안된다.
-> 목적지만 알고 있어서는 안되는 이유!! 되돌아 갈 곳을 남겨둬야.... (최후의 보루?!)
2. 당연한 것들은 과연 당연한가
p.18
태어나면서부터 에어컨이 있는 집에 살며 먹을 것은 언제든지 슈퍼나 편의점에서 팔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본인은 물론 주변사람들도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가는 것이 당연한 듯 생각하는 젊은이들 천지이다. 길은 지구가 생겨난 때부터 포장되어 있는 듯 여기며, 험한 길은 어디를 가야 볼 수 있는지 짐작조차 못한다. 어디를 가든 일년 내내, 24시간 양질의 전기가 공급되는 게 당연하며 도중에 전기가 끊길지도 모른다는 불안 따윈 느껴본 적도 없다.
-> 제3세계, 사막(광야)에 가보아야 겠다! 우리가 누리는 것들이 지극히 당연한가? cf) 공정여행
3. 모든 것에는 원점이 있다
p.22~23
문명에 대한 세 가지 정의
하나는 '밤 시간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며, 나머지 두 가지는 '거의 완전한 수평면을 가질 수 있을 것'과 '바람, 먼지, 모래 등이 몸에 닿지 않는 인공적인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
-> 문명에 대한 정의라는 것도 늘 '자기 중심적 사고'로 부터 시작된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문명이며, 나와 같은 방식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가진 곳도 문명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되는 곳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누구의 판단이며, 누구의 기준인가?
p.23
동물에게는 현재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은 시간을 과정 속에서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이 대체 어디에서 왔는가, 이전에는 어떤 생활을 하고 있었는가, 이러한 것들은 그리 오랜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우리들은 현재 생활 속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나라들을 지구상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원점의 나라)
-> '원점의 나라', '개발도상국' 아프리카?
돈을 벌어야 하는 아이들
4. '먹을 수 없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
p.26
선진국에서는 '먹을 수 없다'는 말을 확대 해석하여 사용하고 있다. 집의 대부금을 다 갚을 수 없다든가, 상급 학교에 보낼 돈이 없는 경우 등에 '먹을 수 없다'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먹을 수 없다'는 말은 글자 그대로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이다.
-> 나는 '배부른 돼지'인가? 배고픈 인간(소크라테스)인가?
5. 구걸하는데 필요한 아이들의 기술
p.26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무슨 일이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면 구걸, 날치기, 도둑질 같은 시원찮은 일도 할 수 밖에 없다.
위 세가지, 일이라고 할 수 없는 그런 짓을 하기 위해서 무엇이 중요한가 하면 낮 시간이 필수다. (주 : 사람이 있어야 하기 때문)
때문에 아이들은 낮에 학교에 다니는 일은 엄두도 못 낸다. 학교에 간 탓에 그날 벌이가 없으면 다음날은 쫄쫄 굶어야 하기 때문이다.
-> 나는 왜 그저 '텍스트'로만 이 글을 읽는가? 나는 왜 가슴 아프지 아니한가?
p.28
구걸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아프리카까지 계속 되는 실질적인 하나의 '게임'이다. 잘하면 대박이고 못해도 본전이라는 느낌이다. '구걸이 대단한 철면피'라는 따위의 심각한 발상은 없다.
-> 가난은 아이를 아이답게 해주지 않는다. 먹고 사는 문제는 사람을 '지독'하게 만든다.
6. 원달러 보이의 모순된 도움
p.31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일은 당연한 의무로 생각하는 것이 그들의 신조이다.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죽기 때문이었다. 사막이나 미개 지역은 결코 인간에게 만만하지 않다. 스쳐지나가는 사람일지라도, 적대 부족일지라도, 어찌됐든 그 사람을 돕지 않으면 그 사람은 죽는 것이다. 자신도 그러한 경우에 도움을 받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남도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어렸을 때부터 터득하게 된다.
때문에 들치기를 하는 일종의 기지와 무상의 봉사는 아무런 모순없이 아이들 생각 속에 혼재해 있다.
-> 우리랑은 어떻게 다른가? 환경에 따라 하는 생각이 달라지고 이는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예절 교육 v.s. 환경의 교육?
7. 학교는 지식 때문이 아니라 밥 때문에 간다
->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공부하는 우리들 중 일부가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밥 먹듯이 굶는 사람들
8. 공복과 기아의 결정적인 차이
다이어트 v.s. 굶주림
p.36
공복과 기아는 명백히 다르다. 우리들은 공복에 대해선 잘 알고 있다. 배가 고파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어가 주문을 한 후의 겨우 몇 분 간이다. 옆 테이블에는 요리가 나왔는데 먼저 주문한 우리 요리는 나오지 않았을 때의 괴로운 느낌이 배고픔이다.
그러나 기아는 다르다. 적어도 처음 며칠의 배고픈 기간이 지나면, 기아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식욕조차 잃어버린 듯 보인다.
-> 월드비전 등에서 실시하는 '기아체험'에 꼭 한번 참가해봐야겠다!!
9. 굶주린 아이는 아프리카가 춥다
p.38
아프리카가 춥다는 사실조차 우리들은 너무 모른다. 평지의 사막에서조차 밤이 되면 종종 섭씨 10도 이하로 떨어진다. 그리고 약간 더 지대가 높아지면, 아프리카나 중동 내륙부의 고지대의 추위는 누더기 옷을 걸친 사람에게는 치명적이다.
-> 나는 몰랐었다. 아프리카 하면 무지 덥다라고만 생각해왔지 추울거라고는... 그러나 생각해보면 납득이 된다. 그렇다 아프리카도 추울 수 있다!
10 달걀을 먹으면 병에 걸려요
-> 달걀을 비싸게 팔기위해 자식들이 달걀을 먹지 못하게 하려는 부모의 거짓말!
p.39
빈곤에 따른 식량 부족과 영양에 관한 무지는 크게 나누어 두 가지 결과를 초래한다.
하나는 '마라스무스'라고 하는 칼로리 부족 상태로 아우슈비츠 수감자들이 그 전형적인 예이다. 뼈 마디마디가 이상하게 크게 눈에 띄고, 그 밖의 부분은 막대기처럼 보일 만큼 수척해진다. 아이들인데도 노인 같은 얼굴로 바뀐다. 갓난아이지만 피부가 쭈글쭈글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언제 죽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또 다른 영양 실조는 겉으로 보기에는 마라스무스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띤다. 배는 잔뜩 부풀어오르고 배꼽이 튀어나온 상태가 되는 경우까지 있다. 볼에도 살이 붙어 이중 턱으로 보인다. 팔 다리도 살이 붙어 빵빵하다.
나는 처음 이런 아이를 봤을 때 "살이 쩌서 튼튼해 보이네. 일본에와서 스모 선수가 되어보세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치도 않은 말이었다. 그런 겉모습은 살이 쪄서가 아니라 부종이 온 때문으로 위험한 징조였다. 당연히 심장에도 부종이 있다고 하면, 갑자기 심장마비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크와시오코르'라고 하는 단백질 부족에 따른 영양 실조 상태로 우리들이 기아 지대에 가면 재빨리 이 두가지 질병을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크와시오코르'는 종종 아이들의 머리를 희한하게도 금발로 변하게 한다. 그래서 나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칼로리 부족의 마라스무스보다 단백질 부족의 크와시오코르 쪽이 가난한 나라에서는 손쓰기 어려울 듯한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 좋으니 배만 채우도록 하는 일은 어떤 의미에서는 간단하다. 그러나 달걀이나 고기를 먹이는 일은 어렵다.
-> 나의 무지함이 원망스럽다!
11. 삶의 목표는 '배불리 먹는 것'
p.43
"부인, 돈이 들어오면 무엇을 사실 생각이십니까?" (예상 - 텔레비전? 자동차? 헛간 지붕 수리?)
"우리 다섯 식구가 배불리 먹을 식량을 사고 싶습니다."
그 말이 정답이었다. 그것이 오늘의 아프리카 목표이다. 우리들은 그런 소박한 목표가 있다는 사실을 오늘날에는 생각지도 못하게 되고 말았다.
세계는 내가 사는 동네뿐
12. 외국에 나간다는 의미
13. 지도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이들
14. 행동 반경이 좁은 사람들
p.51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세계 지도의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을지도 모른다. 돈이 없기에 멀리 갈 수 없어도 그것 또한 인생이다. 그러나 아무리 좁은 행동반경이라도 인생을 깊이 포착하는 안목이 있다면 나름대로 정답고 충실한 인생을 영위할 수 있다. 그 곳에도 웃음이 있고 기쁨이 있다.
->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가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다!
길이 없는 마을들
15. 거기까지는 차로 몇 시간 걸립니까
16. 인간은 스스로 길을 선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p.54
교통 수단인 현실의 길이든 인생 철학을 얻기 위한 깨달음의 길이든 인간은 스스로 길을 선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들은 이미 우리 앞에 주어진 길을 걸어갈 수 밖에 없다.
-> 가고 싶은 곳에 자유로운 수단과 자유로운 템포로 갈 수 있는 자유는 어디로 간 것일까?
17. 사막에서 익사하다
p.58
그러나 황야의 모래는 다르다. 황야에는 여러 가지 단계가 있는데, 모래 사막과 흙먼지 사막과 바위 사막으로 구분할 수 있다. 게다가 모래 사막과 흙먼지 사막이 혼합된, 혹은 흙먼지 사막과 바위 사막이 혼합된 경우도 있다.
그런 지역의 모래는 물을 먹으면 표면이 이내 시멘트 상태로 굳어버려 그 다음에 내리는 비가 스며들지 못하게 한다. 물은 정확히 보다 낮은 지점을 향해 모여들기 때문에, 보통은 물 한 방울 없는 마른강으로 갈색 모래 연기를 일으키며 밀려든다. 빗물이 모두 이 마른 강에 모이기 때문에 강수량은 순식간에 늘어나 그것은 무서운 탁류를 넘어서, 때로는 물의 벽이 되어서 밀어닥친다. 이럴 경우 아무것도 모르고 걸어서 여행을 하는 사람(그런 사람은 지금도 얼마든지 있다), 낙타나 당나귀를 끄는 상인, 관광객을 태운 버스 등이 마른 강 바닥을 지난다면 큰일이다. 그들은 세찬 격류에 휩쓸려 사막에서 익사하게 된다.
18. 유용하면서도 위험한 아카시아 길
사람들을 배신하는 험로
19. 우리들은 길에 대해 과신하고 있다
20. 다닐 수 없는 길
p.67
진창에 빠지면 타이어 뒷부분에 철판을 깐다. 철판이 없다면 나뭇가지, 재목, 멍석 등을 끼우고, 반드시 후진으로 천천히 나오는 게 상식이다.
-> 알아두자!
21. 때론 비극으로 이어지는 길
22. 길도 다리도 아주 쉽게 사람을 배신한다.
물 한 동이의 생존
23. 자연보다 내가 우선 보호되어야 한다
24. 전 세계의 물 긷는 여자들
25. 사막의 지도엔 오아시스가 표시되어 있다
26. 오아시스 물은 위험하다
p.79
그런 오아시스는 생명의 거점이고 산물의 중심지이기도 하지만 오아시스 물이 몸에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
p.80
우리들은 강물을 보면 바로 발을 담그거나 뛰어들어 헤엄치거나 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그러한 행동은 대단히 위험하다. 이렇게 말하면 악어가 있기 때문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었다. 악어가 있을는지도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인간의 피부 속으로 침투하는 여러가지 기생충이 있을 가능성이 더 많기 때문이다.
'강의 장님'이라고 불리는 '옹코서르카' 병도 그중 하나이다. 시력을 잃게 하는 기생충이 피부로 해서 체내로 들어가 그 유충의 면역반응이 시력을 잃게 하는 것인데, 그 기생충을 옮기는 곤충은 강 속에서 번식한다. 나는 중부 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의 어떤 지방에서 한 마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이 병으로 시력을 잃어 1킬로미터 정도 마을 전체를 옮겼다고 하는 곳에 가본 적이 있다.
-> 우리가 생각하는 '오아시스'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이것이 아마 상상과 현실의 차이이겠지만 말이다.
27. 돈을 들여 담수를 만드는 나라
p.80
'브르이리아르사'라는 병이 있다. 그것은 피부나 살이 문자 그대로 썩는 냄새를 풍기며 썩어들어가는 병으로 참으로 비참한 질병이다.
p.81
이 병도 그 지방 의사들은 경험상 '강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p.81
선진국을 한 발짝이라도 벗어나면 우리들은 병에 담은 물을 사서 마시지 않으면 안 된다. 물 한 병은 1달러나 2달러로 레스토랑에서 판다. 포도주는 물보다 약간 비싸다.
우리는 그런 물로 목욕을 하고, 수세식 화장실에서 물을 흘려보낸다. 정원수도 음료수다. 이러한 낭비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산유국인 쿠웨이트나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석유는 나와도 물은 거의 없기 때문에 해수를 담수로 만든다. 비싼 물이다. 그래도 석유로 벌어들인 돈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일이 가능하다.
-> 불평등한 환경.... 나는 물을 얼마나 낭비하였던가, 반성 또 반성해야 한다. 일단 물쓰는 습관을 고쳐야 할터인데...
에이즈든 설사든 죽는 건 마찬가지다
28. 약상자를 두고 온 죄책감
아프리카 말리, 스티요 = 볼펜, 봉봉 = 달콤한 사탕
29. 에이즈든 결핵이든 설사든 죽는 건 마찬가지다
p.85
전 세계에 구급차가 없는 도시는 얼마든지 있다. 우선 구급 차량 자체가 없든지, 있어도 고장났다든지 하는 경우다. 게다가 전화가 없어 통보도 불가능하다. 구급차가 와도 유료이므로 구급 대원은 환자가족에게 수송료를 지불할 수 있는지 어떤지를 먼저 묻는다. 지불 할 수 없다고 하면 친척에게 돈을 빌릴 수 있는지 등을 묻는다. 그 돈을 구하기 위해 근처를 이리저리 돌아다녀봤자 모두 가난하기 때문에 방법이 없다. 돈이 없으면 애써 달려온 구급차는 환자도 싣지 않고 그냥 돌아가 버린다. 이것이 극히 일상적인 일이다.
-> 가난은... 참 나쁜 것이다. 가난은... 정말 몹쓸 것이다.....ㅠ
30.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지 않는 사고방식
p.88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는 '도태'라는 말이 아직 당연시되고 있다. 약자는 죽고, 경쟁에서 이긴 개체만이 살아남는다. 그것은 여전히 하나의 지혜이지 결코 잔혹한 처사가 아니라고 해석된다.
p.89
그러나 그것은 엄마가 먹을 음식도 변변치 않고 따라서 태아도 성장하지 않으며 태어나도 병원에 산소 호흡기나 보육기, 질 좋은 우유도 없는 가난한 나라에서는 '도태가 당연'한 것이다.
31. 모르는 행복, 너무 많이 아는 불행
p.90
물과 음식, 약이 부족한 나라에서는 그 전부를 강한 자,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는 자가 취하는 게 원칙이다. 선진국이 아닌 이상, 죽을게 뻔한 아이들한테까지 줄 우유란 없다.
-> 정말, 가난이 뭔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려야 하는 것일까!!!!
상상할 수 없는 가난
32. 빈곤의 정의
p.93
인간이 한평생 부유함을 모르는 채 죽을 수도 있지만, 인간 생활의 원형인 빈곤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난 믿을 수가 없다.
p.94
세계적으로 말해 빈곤의 정의란 바로 오늘 저녁 먹을 음식이 없음을 가리킨다.
33. 맥주 한 병 값이 노동자의 일당이다
34. 영양보다는 배불리 먹는 것이 최대의 목적
p.98
아프리카에서는 남자와 손님이 먼저 먹는 습관을 지닌 부족이 많다. 남은 음식을 여자와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음식을 남기는 건 실례라는 심리적인 여유가 자리잡을 틈이 없다.
35. 공부원 월급이 밀린 나라
상식을 벗어난 주택들
36. 집모양은 반드시 사각이 아니다
37. 날이 개면 다시 마른다
38. 자연의 제약이 만들어낸 건축물들
- 들보용 목재없이 지어진 돔 모양의 건축물들 ex.) 이슬람 사원 등
39. 필요한 물건은 몸에 지니고 사후에는 추억만이 남는다
p.111
지나가버린 것은 추억일 뿐이므로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p.111
사막은 건전한 정숙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라디오 녹음실에는 죽은 듯한 정적이 흐르고, 사막에는 살아 있는 정적이 흐른다.
고온에서는 인간의 사고가 불가능하다
40. 더운데다 술까지 금하는 곳들
41. 부채 덕분에 잠들다
42. 복잡한 사고를 가로막는 더위
부족하니 불결할 수밖에 없다
43. 청결이란 본질적인 것일까
44. 세탁으로부터 해방된 나라
45. 불결한 병원 때문에 오히려 환자가 늘어난다
46.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
p.131
그렇게 집에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를 만드는 원인의 하나는 선진국 수준의 교육과 원조이다
-> 집에가면 먹을 것이 없지만 학교에는 먹을 것이 있다....
가난한 국가의 무능력
47. 그것을 불행이라 할 수 있을까
p.133
불행은 주관적이기에 그것이 어느 정도로 괴로운지는 비교할 방법이 없다. 전기처럼 계측해서 수치로 나타낼 수도 없으니 말이다
48. 내란의 나라 자이르
49. 버스 차고를 거처로 삼는 미망인들
50. 빈곤, 어떤 논리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
p.141
이 세상에는 단 한 가지, 어떠한 논리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 있다. 다름 아닌 '빈곤'이다. 가난하면 사람들은 아무리 두려운 일이라도 닥치는 대로 할 위험이 존재하며, 이와 동시에 가난하면 아무리 정당한 일도 실행 불가능하게 된다.
-> 가난이란 정말로 큰 문제이다. 모두가 협력해서 도와야 한다.
배우지 못한 사람들의 이기주의
51. 그런 식으로 열심히 일해봤자 무슨 좋은 점이 있을까
p.144
우리도 한 번쯤 이렇게 생각해보면 또 다른 시야를 가질 수 있으리라. 학교에 가서 교육을 받고 자격을 얻어 회사원, 일중독자가 되는 것이 과연 교육을 받는 본래의 목적이었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교육을 받아 교양 있는 인간이 된다 함은 스스로 자신의 생활방식을 기본부터 선택하기 위해서다. 이를테면 자신의 철학이나 신앙을 갖는 일이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도쿄대 법대를 나왔어도 그런 생활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사람은 좀처럼 드물다.
-> 나는 왜 '공부'하는가?
p.145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본인은 지식인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낀 경우가 이번 여행이었다. 요컨대 일본 어디에서도 글을 읽을 수 없고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비극이다.
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교양인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세속적 교양인에게 공통된 한 가지 자세는 있다. 바로 '만일 내가 ~였다면'이라는 가정하에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하는 점과 자신의 생각이나 처해 있는 입장 등을 객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52. 꿈 꿀 여력조차 없다.
p.145
아프리카, 인도, 남미 등의 여러 나라에서 외국인이 아이들에게 "너는 장차 무엇이 되고 싶니?"라고 묻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천진난만한 아이는 자신의 능력을 생각지 않고 '우주 비행사'라든지 '카레이서' 등이라고 말하겠지 하는 전제하에 하는 질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라 사회 밑바닥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너무나도 잔혹한 질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확실한 '현실'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꿈 꿀 여력도 없다. 당장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을 먹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병에 걸리면 병원에서 반드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시스템도 되어 있지 않다. 에이즈 사망자 때문에 최근 평균 수명이 30세 미만이 되어버린 나라도 있다. 30세 나이로는 인간은 진정 무르익지 못한다. 이 세상의 보통 사람의 수명도 평범한 인간다운 삶도 누릴 수 없는는 지경이니,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더라도 대답하기 곤란해지는 게 당연하다.
-> 우리가 '꿈'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누군가에겐 사치일 수 있다는 심각한 사실을 인식해본적 있는가?
53. 자신만 존재하는 의식세계
빈민가의 행복 필수품
54. 신부가 발견한 행복한 생활이란
'해먹'(그물로 만든 침대)
p.154
인간에게 땅이라도 있으니 잠잘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땅이라도 있어 잠잘 수 있음을 자각한다면 인간은 공포로부터 해방된다. 오늘 밤 나는 어디서 자야 할까 하는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된다.
55. 술과 섹스 없이 어떻게 살란 말인가
p.156
생각해보면 이 가난한 삶을 술과 섹스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최대의 문제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목표가 없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부부들은 교육을 받지 못한 탓에 미래상을 그릴 수 없다는 현실을 앞에서도 언급했다. 우리들은 책을 읽기 때문에 인생에 꿈을 그릴 수 있다. 과학자나 스포츠 선수의 생애에 감동하여 나 자신도 그러한 인생을 살고 싶어한다. 혹은 소설이나 시를 써보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웃, 아니면 같은 빈민가에 사는 사람, 그리고 친척 외에는 모른다면 자신이 미지의 세계로 첫발을 내딛는 모습은 결코 그려지지 않는다.
게다가 아이들 또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멀어서 학교에 다닐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교복이나 문구 용품을 살 돈이 없다. 병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도 있다. 아이들에게도 일을 시키지 않으면 가족이 먹고 살 수 없다. 교육 받은 사람이 주위에 별로 없기 때문에 교육을 받으면 어떤 이점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교육을 방해하는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요컨대 어떤 시점에서 보더라도 희망없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고용 가능성도 없다. 국가 자체도 빈곤하기 때문에 복지 혜택의 가망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고달프다. 술을 마시고 섹스를 하고. 이것이 나쁘다고 하는 자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이라면 그러한 상황 속에서 무엇을 하겠느냐고.
56. 일생에 단 하나뿐인 액세서리
57. 맨 밑바닥 삶의 최고의 안정
인간의 식사, 동물의 식사
58.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있는가
59. 매일매일 똑같은 음식을 먹는 괴로움
p.163
가난한 사람들의 단조로운 음식재료는 많은 지역에서 나를 놀라게 했다. ..... '매일 매일 똑같이 맛없는 메밀장떡을 먹는다든지 매일매일 작은 새들의 모이 같은 것을 먹는다'
60. 식사의 3단계 정경
p.164
첫 번째로 먹이의 단계, 요컨대 공복을 느끼지 않으면 그만인 단계다.
제대로 된 식사 단계
식사 내용은 물론이고 그것을 보기 좋게 담아내는 데까지 어느 정도 의식하느냐의 단계가 되면, 식사는 비로소 문화로서의 형태를 취하게 되며 제3단계에 도달한다. 즉 요리의 변화를 그릇이 받아들이게끔 된다. 그리고 그것을 더욱 발전시키면 그 그릇에 걸 맞는 가구와 세간, 방의 장식, 집 자체, 정원의 전망, 주변의 자연 풍경까지 하나의 미학으로 어우러지게 된다. 때론 음악이나 향기, 비 갠 뒤의 눅눅한 풍취까지도 계산된다.
61. 인간의 식사, 동물의 식사
p.167
처음부터 조리한 음식을 먹는다는 자체가 일종의 사치이다.
가뭄이 든 해의 이디오피아에서는 NATO군이 식량 봉투를 공중에서 투하했다. ....
p.168
공적인 회수 작업이 끝나자 누군가가 허가의 신호르 보냈을 리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대지가 지축을 흔들었다. 주위에서 이 공수 작전을 지켜보던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찢어진 봉투에서 흘러나온 곡물이 흩어져 있는 지점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짐승처럼 달린다. 모래 먼지가 주위에 자욱하다. 사람들은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손으로 곡물을 흙 채 줍는다. 한꺼번에 몰아 떨어져 있는 곳은 효율이 좋으므로 그런 곳을 에워싸고 여자들이 서로 치고받고 싸우기 시작한다.
몇 십 분 후에 싸움 소동은 가라앉는다. 많은 사람들은 다 가버렸다. 그래도 여전히 흙 속에 박힌 곡물 낱알이 많이 떨어져 있다. 굶주린 사람들은 게으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라면 그 곳에 계속더 남아 한 톨씩 끝까지 주을 것이다. 그렇게 모아도 상당한 양이 될 것이다.
굶주린 사람들은 곡물 생 알갱이를 그대로 입에 넣는다. 성서에도 안식일에 굶주룬 예수 제자들이 보리 이삭을 뜯어먹었다는 일화가 있다. 옛날 수천 년 전부터 배고픈 사람들은 모두가 먹을 수 있는 것은 조리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입에 넣었다. 이디오피아에서는 이미 체력이 바닥나 땅바닥에 주저앉은 남자가 주변에 자란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영락없이 동물과 마찬가지다. 바로 그 옆에서 나는 굶주림도 모른 채 단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무자비할 수 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조용히 그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그보다 잘나서 '인간'의 품위를 유지하고, 그는 '동물'이 된게 아니다. 다만 우연히 나는 일본에서 태어났고 그는 이디오피아에서 태어났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이다.
사람에게 친절한 자연은 없다
62. 자연과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가
63. 자연을 위협으로 느끼지 않는 사람들
p.174
오늘날 선진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연을 위협이라 느낀 적이 거의 없다. ... 내진 건축은 상당한 진도에도 견딜 수 있고 추운 지역에서는 집이 냉기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준다는 믿음이 있다.
64. 사람에게 친절한 자연이란 없다
p.174
숲과 사막 등은 사실 사람에게 친절한 존재가 아니다. 둘 다 요물처럼 기분 나쁘고 언제나 날카로운 어금니를 드러내지 않고 있을 뿐이다. 사람이 다니는 길도 짐승이 다니는 길도 없는 곳을 헤매다보면 방향을 알 수 없게 된다. 숲은 태양을 가릴 것이고, 사막은 한 번 바람이 불면 방금 전 자신이 지나왔던 발자국도 지워버리기 때문에 방향을 바꿀 수도 없다. 즉 되도아갈 수 없게 된다.
65.'댐은 필요없다'고 하는 말
p.177
자연에 전혀 손을 대지 않은 상태의 인간 생활도 비참하다. 강은 범람하는 게 정상이고 댐이 없으면 전력도 물도 부족하다. 우리들이 세계적으로 드문, 정전을 거의 경험한 적이 없는 은혜를 입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수력이나 원자력 발전소 덕분이다. 좀처럼 홍수의 재난을 당하는 일도 없음은 일본인이 치수治水를 나라의 생명을 지키는 일로 알고 옛날부터 대비해왔기 때문이다.
댐이나 원자력 발전소도 없이 물과 전력을 확보하라고 한들 불가능한 일이다. '이제 댐은 필요 없다'고 하는 말은 근사하게 들리지만 그 경우라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이미 완성된 댐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전기의 혜택을 받고 있어 그렇게 말할 따름이다.
자신은 도시에 살면서 바로 가까이에 숲이 있고, 거기에 내가 아닌 사람들이 살고 있는 상태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는 분위기다. 도시에 사는 사람은 에어컨이 작동하는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한다. 그러나 숲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모기투성이의 땅에서 떨어질듯 총총한 별빛 밤하늘 아래서 원시의 소리를 듣고 있다. 그래도 괜찮을까. 그것이 괜찮단 말인가. 나는 쉽사리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거목 아래 어르신들과 민주주의
66. 민주주의란 모든 것에 통용되는 절대적인 것인가
p.180
대개 막강한 조직을 지닌 단체는 순수한 민주주의만으로는 해나갈 수 없다. 교회, 군대, 예술을 전하는 모든 조직과 단체는 본질적으로는 민주주의가 파고들 여지가 없다. 물론 사람이 조직을 만들고 그 사람들은 본업 외에 놀기도 하며 생활도 한다. 그러한 면에서는 누구나가 평등의 즐거움이나 혜택을 받음이 당연하지만, 가령 꽃꽂이 종가에서는 바로 어제 입문한 신인은 역시 맨 먼저 인사하는 법이라든지 수제자의 지시에 따르는 법이라든지 꽃꽂이실 청소나 정리하는 법부터 배우게 된다.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면 안 된다는 이유로 첫날부터 꽃꽂이를 하게 해달라고 조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67. 기다림 외에는 해결법이 없다
68. 어떤 마을의 의식
69. 자아가 없는 사람들의 민주주의
p.185
민주주의가 거의 전세계에 통용되며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의식적으로 대단히 '뒤쳐진 국가'라는 생각이야말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사고이다. 만일 민족이나 부족의 자립을 원한다면 그들이 오랜 세월 유지해온 정치 형태에도 그 나름의 충분한 경의를 표해야 마땅하다. 그것은 마치 각국의 민족 의상과 같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들에게 민주주의는 이상이므로 민주주의는 좋은 제도라고 늘 말버릇처럼 되뇌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전세계에서 민주주의를 실행하는 일은 현 상태에서는 극히 어렵다. 첫번째 이유는 문맹률이 높고 교육이 보급되어 있지 않은 관계로 스스로 사고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자아가 없는 곳에서의 민주주의는 오히려 악질적인 중우 정치가 되며 도리어 독재적인 지도자에게 이용당하게 된다. 그러나 아프리카형 촌장 지배에서는 그 정도로 두드러지게 어리석은 인물이 촌장이 될 가능성느 희박한 듯 싶다.
오랜 세월 일본인은 사회주의 국가는 민주주의 국가보다 인민의 힘이 훨씬 강하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만큼 사상, 표현, 학문, 이주, 신앙 등의 자유를 탄압한 나라는 없다. 또한 사회주의 국가만큼 당의 실력자가 인민의 눈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막대한 권력이나 부를 원하는 대로 마음껏 누리고 있는 곳도 없다. 지금도 그런 나라의 '정보 공개'란 웃기는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여전히 모든 신문은 당의 통제하에 놓여 있다.
70. 민주주의가 가능한 나라는 한 줌밖에 되지 않는다.
어이없는 죽음들
71. 평균 수명이 삼십대인 나라
p.190
"우리 나라에서는 고령화 문제 따위는 없어요."
"그렇게 잘 되어 있나요?" 내가 아는 수녀가 말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가족 간의 결속이 돈독하기 때문에 가족이나 친척 중 누군가가 고령자를 보살피리라는 추측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자 아프리카에서 온 수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어차피 우리 나라에서는 여러분들이 말하는 소위 고령이 되기 전에 모두 죽어버리니까요."
이 어안이 벙벙해지는 말 속에는 중요한 사실이 숨겨져 있다. 에이즈의 만연으로 평균 수명이 삼십대가 된 나라도 있다. 그러나 에이즈가 아니더라도 많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사람은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한다.
72. 중노동 끝에 아이 둘을 남기고 결핵으로 먼저 간 젊은이
73. 무지와 빈곤이 못을 밟은 소녀의 짧은 생을 마감케 했다
74. 세 시간 반의 험로와 유료 구급차... 그래서 산모는 죽었다
75. 병과 불은에 쓰러지는 인간 생활의 원형
p.197
우리는 자신의 생애를 대단하게 생각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족의 운명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먼 나라에 살고 있는 낯선 사람의 운명에 대해 자신과 똑같이 느끼는 일은 좀처럼 어렵다. 그러나 병과 불운에 쓰러지는 우리 인간 생활의 원형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 병과 불행과 같은 문제, 궁극적으로는 '죽음'의 문제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다만 '죽음'에 대해 이런 저런 다양한 '관점'만을 가질 수 있을 뿐이다.
p.198
나는 일본에서 태어났으므로 극진한 간호를 받을 수 있음은 당연하다. 그리고 미래에도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극진한 간호를 받을 수 있기를 지향해야 마땅하다고 현대인은 하나같이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그런 식으로 되지는 않으리라. 나 또한 나의 생애나 죽음을 이 지구상의 수많은 고통스러운 죽음과 마찬가지로 가볍게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에필로그 다시 원점에 서서
76. 원점은 어디에 있을까
p.202
가난한 가족에게 음식은 생존할 가능성이 있는 자만이 먹을 권리가 있다.
-> 적자생존이다. 이것이 가장 효율적이지만, 인간다운 모습은 아니다. 그러므로 비참한 현실아닌가!
77. 내가 먼저야말로 인간의 본성
78. 사람은 존재하는 임무를 지고 있다
p.205
"우연? 정말로 당신은 그렇게 생각합니까? 결코 그렇지 않아요.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랍니다."
모든 사람이 이 지상의, 그의 존재 지점에서, 그 사람이 존재하는 임무를 지고 있다는 말일까?
79. 인간이 인간다워질 때
p.208
우리들은 누구나 제한된 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원류에 서서 원점을 주시하는 이는 행복한 사람이다. 사람은 역사와 시時에 의해 종縱과 횡橫을 살아간다. 시간의 저편에도 공간의 심오한 곳에도 원점이 있다. 그 원점에 확고하게 연결되어 있을 때만이 비로소 인간은 인간다워지는 법이다.
-> 제한된 생. 모든 것이 제한된 시간을 살아간다. 그 시간 속에 자신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함께 이 땅 어딘가에 동시대를 보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보다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을 보며 우리 또한 그러한 시절(원점)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또한 우리보다 풍요롭게 살아가는 이들을 보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지향점)을 모색해보는 것이 중요하겠다. 자신의 과거를 아는 것, 그것을 통해서 겸손을 배우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인간은 진정 인간다워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