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PROUST적인 삶의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남을 배려하며 겸손할 수 있는 것, 일상의 사소한 것들이라도 진부하지 않게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는 것, 이러한 모든 것이 PROUST적인 삶의 방식인 것이다.
한 인간의 삶과 그의 사고 및 행동방식에 대해서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인지도 모른다. 허나 이 책을 읽은 내가 PROUST적 삶의 방식에 대해 그저 추종하고자 한다면 결코 이것은 PROUST적 삶의 방식이 아닐 뿐더러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한 것도 아닐 것이다.
결국 나는 이 책을 통해 PROUST의 영향을 받을 수는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PROUST적 삶의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이제 나는 이 책을 저멀리 치워버리고 나만의 이야기, 나만의 삶의 방식을 만들어볼까 한다.
1. 하나, 현재의 삶을 사랑하는 법
세계의 종말, 남은 마지막 시간에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고전적인 대답)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 - 일상의 소중함을 역설
p.13
죽음이 임박했을 때 갑자기 생기는 삶에 대한 애착은, 우리가 흥미를 잃은 것은 목적이 보이지 않는 삶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영위하는 삶의 일상적인 형태라는 것, 그리고 우리에게 불만이 생기는 것은 인간의 경험이 돌이킬 수 없도록 음울하기 때문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특정한 방식 때문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자신의 불멸성에 대한 습관적인 믿음을 버린다면, 우리는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지만 영원하게 보이는 존재의 표면 아래 숨어 있는 수많은 시도되지 않은 가능성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 Q. 정확히 무엇이 온전한 하나의 인생을 만드는가?
2. 둘, 자신을 위한 독서법
p.32
이렇게, 분명히 전혀 다른 세계를 돌아다니는 사람들 사이에 시각적인 연관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다음과 같은 프루스트의 주장을 설명한다.
"미학적으로 볼 때 인간 유형은 매우 제한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항상 우리가 아는 사람들을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그러한 즐거움이란 단지 시각적인 것만은 아니다. 인간 유형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우리가 아는 사람들에 대해 읽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p.35
"사랑하는 사람의 특징을 여주인공에게 부여하지 않고서는 소설을 읽을 수 없다"는
현실에서 모든 독자는 자기 자신의 독자가 된다. 책이란, 그것이 없었다면 아마 독자가 자신에게서 결코 경험해 보지 못했을 어떤 것을 분별할 수 있도록 작가가 제공하는 일종의 광학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책이 말하는 바를 독자가 자신 속에서 깨달을 때 그 책이 진실하다는 것이 입증 된다.
p.40
소설의 가치는 우리 자신의 삶에서 볼 수 있는 것들과 비슷한 정서와 사람들을 표현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의 가치는 그것들을 우리가 묘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빼어나게 묘사할 수 있는 능력, 즉 우리가 명확히 서술할 수는 없었으나 우리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느낌들을 지적해 주는 능력에도 있다.
p.42
우리는 하늘의 음영, 표정의 변화무쌍함, 친구의 위선, 또는 이전에는 슬퍼할 줄도 몰랐던 어느 상황 속에 숨겨진 슬픔에 주의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그 책은 그 자신만의 발달된 감수성으로 우리를 예민하게 하고 우리의 숨겨진 촉각을 자극하게 될 것이다.
3. 셋, 여유 있게 사는 법
p.55
진실은, 우리는 나이가 듦에따라 우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근심하게 하고 항상 불안하게 함으로써 그들-부모님-을 죽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 경험을 축약해 버리는 것에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우리가 중요성을 부여하기만 하면 우리 자신을 인도할 수 있는 분명한 이정표들을 얼마나 쉽게 잃어버릴 수 있는지 보여준다. 우리가 문학과 연극의 내용을 단신의 형태로 아침식사 시간에 처음 맞닥뜨리게 된다면,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아마 조금도 감동을 느끼지 않을 것이며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베로나의 연인들의 비극적 결말. 연인이 죽었다고 오인한 후에 청년이 목숨을 끊음. 그의 운명을 확인한 후 처녀도 자살. -로미오와 줄리엣
p.57
예술작품의 위대함은 겉으로 보이는 소재의 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전적으로 그 소재를 어떻게 다르느냐에 달려있다.
p.60
프루스트는, 작가는 전형적으로 이렇게 뜻밖의 읽을거리-여기서는 열차 시간표가 그 예이다-를 즐긴다고 주장했다. 작가란 위대한 예술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사물들에 열정을 가지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지방 극장에서의 형편없는 음악공연 또는 고상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어처구니없게 생각하는 무도회가, 오페라 극장에서의 감탄할 만한 공연이나 포부르 생제르맹에서의 극히 세련된 연회보다도 훨씬 더 추억을 불러일으키거나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일련의 공상과 집착을 낳을 것이다.
p.63
너무 빨리 하지 마세요. N'allez pas trop vite
-> 서두르지 않는 것의 이점? 그러는 도중에 세상이 더 재미있어 진다는 것!
p. 65
간단한 설명에 좋은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갑자기 그저 '불안'해지거나, '향수에 빠지'거나, '정착'하거나, '죽음에 직면'하거나, '그냥 놔두기를 두려워'했던 것이 된다. 이전의 판단이 불필요하게 복잡했던 것으로 보이게끔 문제를 서술하면 아픔이 누그러질 수도 있다.
4. 넷, 훌륭하게 고통을 견디는 법
p.92
사실 푸르스트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는 문제가 있기 전까지는, 즉 우리가 고통에 빠지고 우리가 희망했던 대로 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까지는 아무것도 제대로 배울 수 없다.
....... 중략 .......
물론 고통 없이도 우리의 정신을 사용할 수 있지만, 프루스트가 제시하는 것은 고통스러울 때에만 철저한 탐구심이 생길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앓는다, 고로 생각한다. 그리고 고통을 더 큰 맥락 속에 위치시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생각한다. 생각은 고통의 기원을 이해하고, 그것의 여러 특성들을 포착하고, 그 존재를 체념하고 인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따라서 고통 없이 떠오른 생각은 동기부여의 중요한 원천 하나를 결여하고 있다. 프루스트에게 정신적 활동은 두 가지 범주로 나눠지는 듯 하다. 특별한 불편 없이 그저 어떻게 수면이 이뤄지는가 또는 어떻게 인간이 망각하는가를 알고 싶어하는 냉담한 욕구 때문에 생기는 고통 없는 생각들, 그리고 잠을 잘 수 없거나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고민스러운 상태 때문에 생기는 고통스러운 생각들이 있다.
p.94
지혜란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구도 우리 대신 가줄 수 없는 여정을 통해서, 누구도 우리 대신 해줄 수 없는 노력을 통해서 우리는 그것을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
행복은 몸에 좋다. 그러나 정신의 힘을 길러주는 것은 고뇌다.
p.99
고통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득이란 그것이 지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탐구의 가능성 - 아주 쉽게, 그리고 가장 자주 간과되고 거부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연다는 것일 뿐이다.
5. 다섯, 감정을 표현하는 법
p.119
사람들이 무엇을 가장 불쾌하게 느끼는지 살펴보면 그들에 관한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p.123
상투어의 문제는 잘못된 관념을 담고 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주 훌륭한 관념들을 피상적으로 조합해 낸다는 데 있다.
상투어들은, 한편으로는 단지 피상적으로 스쳐 지나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상황을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을 우리에게 심어주기 때문에 해로운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방식이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느끼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묘사하는가는, 어떤 수준에서는 우리가 그것을 처음에 어떻게 경험하는가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p.133
개인적인 영역에서보다, 언어에 개성적인 문체를 새겨 넣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 더 분명한 곳은 없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더 잘 알게 되면 될수록 그들의 정식 이름은 점점 더 부적절하게 보이게 되고, 반면에 그들의 성격에 대한 우리의 깨달음을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려는 욕망은 더 커지게 된다
-> 애칭은 이래서 생겨나는 거다. 탁월한 설명이다.
p.135
만약 상투어로 말하는 것이 문제라면, 그것은 틀에 박힌 표현들이 포착하거나 알려주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종류의 비, 달, 햇빛, 감정이 세계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p.140
현실 자체와는 매우 다르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현실 자체로 받아들이는 표현 형태를 통해 우리가 느끼는 바를 나타내는 습관.
이 견해에 따르면, 우리의 현실 개념은 매우 자주 부적절하거나 잘못된 설명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에 실제의 현실과 차이가 있다.
p.142
허영, 열정, 모방심리, 추상적인 지성, 습관이 오랫동안 우리의 눈을 가려 왔으며, 예술의 과제란 그것들을 치우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예술은 우리를,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이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숨겨져 있는 깊은 층위에 도달하도록 이끈다.
p.143
삶이 상투적이기라기 보다는 낯선 실체라는 것.!!
6. 여섯, 좋은 친구가 되는 법
p.150
친교란 결국은...... "우리가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믿지 않게 하려는 거짓말"
이상이 아니다.
p.160
책이란 우리가 습관 속에서, 사회 속에서, 결함 속에서 표출하는 자아와는 구별되는, 또 다른 자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풍부하고 정확한 언어로 복잡한 생각을 표현하는 데 부족한 점이 있어도, 친교는 여전히 옹호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장 사사롭고 솔직한 생각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게 하고, 한번쯤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정확히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비록 이러한 관념은 매우 호소력이 있지만, 그런 솔직한 소통의 가능성은 다음의 두 가지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 우리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가? 특히, 우리는 친구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러한 생각들은 진실이기는 하지만 잠재적으로 상처를 주는 것일 수도 있고, 정직하기는 하지만 불친절하게 보일 수 있다.
2. 우리가 이 솔직한 생각들을 남들에게 드러낼 때 그들이 우리와 절교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한 평가. 이 평가는 우리가 얼마만큼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지, 그리고 설사 다른 사람들의 약혼자나 자작 서정시를 비판하여 그들을 순간 화나게 하더라도 계속 친구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한 인간적 매력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내려진다.
p.165
친구가 많지 않은 사람들이 보통 그러한데,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내용과 타인의 관심사가 쉽게 일치하는 것이 친교라고 가정한다. 이보다는 덜 낙관적이었던 프루스트는 불일치의 가능성을 인식하였고, 질문을 하고 자신의 마음에 있는 말을 함으로써 상대방을 지루하게 하느니 항상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결심했다.
"대화할 때 남들을 즐겁게 하려는 대신 이기적으로 자신의 관심사를 설명하려는 사람들은 눈치 없는 사람들이다."
대화는 동료들을 즐겁게 한다는 명분을 위해 그 자신을 포기할 것을 요구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눌 때 말을 하는 것은 더 이상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그들의 모습에 자신을 맞춰야 한다."
-> 나는 이러한 삶의 방식을 유지하고 있지만, 결코 이것이 옳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것은 스스로를 황폐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에 맞추려는 어정쩡한 태도는 결국엔 자신의 매력을 사그라들게 만들 것이다.
7. 일곱, 일상에 눈을 뜨는 법
p.192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봄으로써 생길 수 있는 행복은 프루스트의 치유 관념에서 핵심적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불만이, 삶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우리가 삶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p.195
어떤 순간에는 삶이 매우 아름답게 보이는데도 삶이 사소한 것처럼 생각되는 까닭은, 삶의 흔적 그 자체가 아니라 삶에 대해 아무것도 간직하고 있지 않은 매우 다른 이미지들에 근거해서 판단을 내리는 데 있다. - 때문에 우리는 삶을 멸시하는 것이다.
이 빈약한 이미지들은 당시의 장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따라서 이후 그것의 현실적 모습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p.197
왜 우리는 사물들을 더 풍부하게 음미하지 않는가? 이것은 부주의나 게으름의 문제를 넘어서는 문제다. 그것은 우리가 아름다운 이미지들에 충분히 노출되지 않은 데서 유래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이미지는 우리 자신의 세계에 충분히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안내하고 우리에게 착상을 불어 넣을 수 있다.
p.205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미지들은 대체로 낡았을 뿐 아니라 쓸데없이 사치스럽다. 프루스트는 우리에게 세계를 똑바로 평가하라고 촉구하면서 수수한 광경이 지니고 있는 가치에 대해 계속 환기시킨다.
8. 여덟, 행복한 사랑을 하는 법
p.222
사물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마음속에 있는 눈으로 그것을 다시 그려 볼 것도 요구하기 때문이다.
p.223
무언가가 물리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결코 그것에 주목할 수 있는 이상적인 상황은 아님을 제시한다. 사실 존재란 바로 우리가 그것을 무시하고 간과하게 만드는 요소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시각적 접촉만으로 모든 일을 다 했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p.224
무언가를 박탈당했을 때 우리는 그 소중함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사물의 소중함을 이해하고 싶다면 그것을 박탈당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어떤 것을 겹핍하고 있을 때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감정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고, 우리가 그것을 결핍하고 있지 않을 때도 그 교훈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p.225
아무리 매력적인 사람일지라도, 상대편이 그 매력에 전심으로 집중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
9. 아홉, 책을 치워버리는 법
p.243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를 깨닫기 위해서는 대가가 느꼈던 것을 자신 속에 재창조해 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 따라서 독서를 해야 한다.
p.270
(독서를) 학문 분과로 만드는 것은 단지 '자극'에 불과한 것에 너무 큰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독서는 정신적 삶의 문턱 위에 있다. 그것은 우리를 정신적 삶으로 인도할 수 있지만, 정신적 삶을 구성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