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이란 얼마나 무서운가. 누군가 의도적으로 퍼뜨린 악의적인 선입견이라면 더욱 그렇다. 흔히 쓰이는 선입견 조장 방법을 알아 보자
1. 칭찬을 베이스로 깔고 모함을 포인트로 주기
- 사람들은 베이스보다 포인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예) "쟤 공부 잘하잖아. 근데 알고 보면 되게 멍청하다."
- 베이스 : 잘하다, 포인트 : 멍청
2. 과거의 단점으로 현재의 장점 흠집 내기
- 실습으로 만든 파자마가 좋은 점수를 받았을 경우
예) "초등학교 때는 박음질이랑 시침질도 구분 못했어."
* 선입견의 부정적 효과와 긍정적 효과에 대한 설문
1. 부정적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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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지가 작성한 국어 수행평가 설문조사, 나는 왜 이러한 내용을 넣은 걸까 궁금했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여기서는 선입견에 대한 조장방법이라고 했지만, 나는 씁쓸한 웃음을 유발하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p.114
"신은 정말 있을까? 있으면 왜 나쁜 사람들을 그냥 둘까?"
"얘는, 그래서 잡아가는 사람도 만들었잖아. 어우, 와사비 쎄다."
"그렇구나......."
"괜히 애써 무겁게 살지 마. 산다는 거 자체가 이미 무거운 거야.
똥폼 잡고 인생 어쩌구저쩌구 하는 것들, 아직 인생 맛 제대로 못봐서 그래.
제대로 봐봐, 웃음밖에 안 나와. 너 요즘도 책 많이 읽지?"
"머리나 식힐 겸 해서."
"이놈의 글자들 끝장을 내리라, 그러면서 전투적으로 읽으면 그거 독서 아냐. 독파지.
책하고 무슨 정쟁하는 것도 아니고."
"좋잖아, 간접경험도 하고."
"따님, 제발 직접경험도 좀 하고 사시게! 다 먹었으면 가자."
엄마는 천지 어깨를 꾹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악의 문제에 대한 변증이 필요. 자유의지와 전적타락의 개념이 나와야겠다.
-> 그렇다. 괜히 애써 무겁게 살 필요가 없다. 인생이란 것 자체가 무겁고 피곤한 것이니
말이다... 좀더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살자...
-> 음, 독파인 건가? 나 이 책 하루만에 다 읽었는데?! ㅋ 시간으로 하면 2~3시간이였던가? ㅋ 그래, 진짜 그렇다. 그런데 정말 나에게도 '간접경험'이 아닌 '직접경험'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인생이 덜 따분하겠지... ㅋ
p.123
"언니. 꼭 대학을 나와야 나은 사람이 되는 걸까?"
"사람들이..... 그렇게 판단하잖아. 그게 제일 쉬운 방법일 테니까."
->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쉬운 방법, 대학....
씁쓸하다...
p.123
아이들은 화연이가 뒤끝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는 아니라고 합니다. 활을 쏜 사람한테 뒤끝이 있을 리가요. 활을 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질질 흘리고 다니는 사람, 아직 못 봤습니다. 아이들은 과녁이 되어 몸 깊숙이 박힌 활이 아프다고 한 제게 뒤끝을 운운합니다. 참고 인내해야 하는 건 늘 당한 사람의 몫인지요. 아이들은 저 스스로 활을 뽑고 새살을 돋아나게 해 파인 자국을 메우길 바랐습니다. 그렇게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새로 돋아난 살은 왜 그렇게 눈에 띄는지, 더 아팠습니다. 국어 수행평가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렇다고 발표까지 염두에 둔 건 아니었습니다. 작성한 설문지를 2부 프린트해서, 1부는 숙제로 내고 1부는 실수인 척 교실에 둘 생각이었습니다. 대상이 확실한 글이기 때문에 눈치 빠른 화연이는 알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거기까지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발표를 시킨 것입니다. 기회. 선전포고. 충돌. 당당하게 맞설 생각이었습니다.
"아까 발표한 거, 누구 들으라고 쓴 거야?"
"너."
"아이 뭐야, 너 아직도 꽁한 거야? 사과했잖아."
뻔뻔함이 화석이 되어 심장에 박힌 아이. 시기와 질투, 빈정거림과 잔인함이 온몸을 비늘처럼 에워싸고 있는 아이였습니다.
"내가 벌써 애들한테 뻥이라고 했다니까. 야, 우람아!"
회피. 희석. 동조자 내지 지원군.
"내가 전에 천지 멍청하다고 한 거, 잘못 본 거라고 했지? 초등학교 때 왕따 아니었다고 정정했지?"
"응."
"거봐. 벌써 다 얘기했다니까! 얘 안 믿는다."
"그래서 수행평가 그렇게 쓴 거야? 전에 화연이가 사과한 거 같은데, 너 은근 피곤하다."
전술과 전략의 실패. 기회의 허비. 필요에 의한 동조자.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화연이였습니다. 이 아이들 그만 보고 싶었습니다. 아이들마저 검은 구름이 되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넓은 판을 짜지 않았습니다. 대신 줄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긴 줄이어야 했습니다.
"천지야, 애들하고 노래방 가자."
"오늘 꼭 빌려야 할 책이 있어서 도서실에 가야 돼."
"나 분명히 같이 가자고 했다. 괜히 나중에 내가 너 따돌렸다고 하면 안돼."
차라리 웃음이 났습니다. 하하하. 하하하하.
구령대 뒤로 난 계단에 앉으면 운동장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아이들이 빠져나간 운동장은 너무 우울합니다. 텅 빈 운동장에 홀로우뚝 서 있는 농구대마저 그렇습니다. 나는 가방에서 털실과 코바늘을 꺼냈습니다. 촘촘한 사슬뜨기가 좋겠습니다.
"뭐 하냐?"
미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손하고 눈이 쉬는 날이 없다니까. 뭘 만드는데 이렇게 길게 짜?"
"쓸데가 있어서."
"수행평가 그거, 선전포고지? 보기 좋게 실패했고."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한 확인.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한 거드름.
"김화연한테 그게 먹힌다고 생각해? 걔 그거 안 통해."
그럼 어떡할까? 곽미라 넌, 공범자는 되기 싫고, 멋진 구경은 하고 싶은거야. 그렇지?"
"애들이 김화연 좋아서 같이 다니는 줄 아냐? 만날 먹을 거 사주지, 노래방비 다 내지, 극장 가면 팝콘을 쫙 돌린단다. 봉이야 그냥."
하하하. 가만 보면 남들도 다 아는 사실을 저만 아는 줄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일수록 사실은 남들보다 덜 알고 있습니다. 모두가 같은 중학교로 배정받기 전에, 적어도 같은 반으로 확정되기 전에, 아직 내 마음에 자리하고 있던 아이들과 헤어져야 했습니다. 이렇게 늦으면 안되는 거였습니다.
"나, 갈게. 근데 그 끈 두껍기만 하고 별로 안 예쁘다. 다른 색도 좀 섞어라."
몰랏나 봅니다. 나는 언제나 붉은색 실로만 짠다는 걸.
p.147
"지쳤지 나도. 사람 안 변하더라.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원래'라는 말이야. 걔가 원래 그런다. 원래 그러는 거 모르고 결혼했냐? 환장할 뻔했다. 뭘 해도, 원래라는 말 앞에서 다 무너지는 거야. 처자식 굶고 있는데, 원래가 어딨냐? 나도 진짜 원래 그런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원이 없겠더라. 잘 좀 풀어봐."
-> '원래'라는 말의 무시무시한 의미!
p.148
"그러게 말이다. 너, 죽지 마라. 언젠가는 죽기 싫어도 죽어. 일부러 앞당기지 마.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사람들, 더 아프게 하는 거야. 죽어서 해결될 일 아무것도 없어. 묻어둘 수는 있겠지. 근데 그거, 해결되는 거 아냐. 냄새가 진동하거든. 진짜 복수는 살아남는 거야. 생명 다할 때까지 살아."
-> 진짜 복수는 살아남는 것. 생명 다할 때까지 살아남는 것. 그것이 살아있는 그에 대한 가장 좋은 방법의 복수.
p.196
"진짜라고 해줘? 세상에 진짜처럼 무서운 게 없다. 자기하고 상관없는 진짜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야 입이 간질간질하겠지."
진짜를 알고 있는 자의 조롱. 눈앞의 이득과 상대를 비웃으면서 얻는 비열한 쾌감을 위해 남의 아픈 진짜를 이용하는 인간들. 묻어두고 싶은 자신의 진짜를 타인의 진짜로 덮어놓고 슬쩍 빠지는 인간들. 엄마는 진짜든 가짜든, 그 속에 가려진 진실을 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진짜 가짜가 존재하기까지의 진실을 봐. 눈에 확 보이는 진짜 가짜, 그거 완전 생 날거야. 잘못 손대면 탈 난다. 진짜가 진실, 가짜가 거짓, 그러면 세상 살기는 참 편할 거야."
p.210
"사과하실 거면 하지 마세요. 말로 하는 사과는요, 용서가 가능할 때 하는 겁니다. 받을 수 없는 사과를 받으면 억장에 꽂힙니다. 더군다나 상대가 사과받을 생각이 전혀 없는데 일방적으로 하는 사과, 그거 저 숨을 구멍 슬쩍 파놓고 장난치는 거예요. 나는 사과했어, 그 여자가 안 받았지. 너무 비열하지 않나요?"
p.212
검은 그림자는 오래전부터 따라다녔습니다. 어둠 속으로 숨어도 보았지만, 그럴수록 더 짙은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림자에 이름을 붙인 사람은 그 남자입니다. 우울증. 자신에게도 가끔 그런 그림자가 따라다닌다고 했습니다. 웃었습니다. 또 한 사람의 '아는' 사람이 나타나고 말았으니까요. 자, 내 그림자의 정체를 알았고, 멜랑꼴리한 이름마저 붙여줬으니, 이제 그것과 헤어지는 방법을 알려주시겠어요? 하하하하하..... 우울증이라. 숨겨야 했습니다. 그래서 책에 나온 증상들을 정리해놓고 반대로 행동했습니다.
"또 보네? 학교보다 여기가 책이 더 많지?"
"네. 우리 집 책상을 조금 손보면 아일랜드 식탁처럼 바꿀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걸 알려주는 책이 학교에는 없거든요."
"그런 거 잘하나 봐?"
"취미예요. 식사하셨어요? 저 식당 갈 건데."
"같이 가자. 나도 아직 안 먹었어."
"난 여기 간정 떡볶이가 제일 맛있어요."
"내가 그동안 널 잘못 봤나 보다. 우을증이 아니라 잠시 우울했었던 모양이야. 역시 십 대가 좋다. 에너지가 팡팡 솟아. 부럽다."
아시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다른 사람의 생을 OX퀴즈처럼 안다와 모른다, 로 결정지으면 안 됩니다. 당신은 항상 반듯한 가르마에 긴 머리를 하고 시립도서관을 자주 찾는 남자일 뿐,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누군가 내게 당신에 대해 물으면 "그 긴 머리 아저씨 압니다."라고 해야 할까요. 다시 말합니다.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그리고 당신도, 나를 모릅니다. 당신이 자주 보던 내 그림자는 이제 보이지 않을 겁니다. 잠시 숨겼습니다. 하지만 나는 압니다. 오늘 나를 따라다니는 검은 그림자가, 내일은 검은 바다가 되어 나를 삼켜버릴 것이라는 걸. 그래서 미리 가려고 합니다. 당신은,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p.220
앞으로는 사람 가지고 놀지 마. 네가 양손에 아무리 근사한 떡을 쥐고 있어도, 그 떡에 관심없는 사람한테는 너 별거 아냐. 별거아닌 떡 쥐고 우쭐해하지 마. 웃기니까."
p.226 작가의 말
"잘 지내니?"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나를 붙잡았던 말입니다. 늘 안부를 묻던 이모의 저 말이 없었다면, 나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끝내 어린 생을 놓아버렸을지 모릅니다. 너밖에 없다는, 사랑한다는, 모두 너를 위해서라는 우아한 말이 아닌, 진심이 담긴 저 평범한 안부 인사가 준비해두었던 두꺼운 줄로부터 나를 지켜준 것입니다. 중학생 때겠지요.
그 아픈 기억을 지워버리려고 애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습니다. 기억이라는 것은 잊으려 할수록 악착같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녀석이니, 잊을 수도 없습니다. 이제는 그 고약한 기억에 슬쩍 웃기도 합니다. 나를 지치고 쓰러지게 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걱정하고 바라봐주는 누군가도 있다는 걸 깨달은 날이기도 하니까요.
어른이 되어보니, 세상은 생각했던 것처럼 화려하고 근사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미리 세상을 버렸다면 보지 못했을, 느끼지 못했을, 소소한 기쁨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거면 됐습니다. 애초에 나는 큰 것을 바란 게 아니니까요. 혹시 내 어렸을 적과 같은 아픔을 지금 품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뜨겁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미리 생을 내려놓지 말라고, 생명 다할 때까지 살라고. 그리고 진심을 담아 안부를 묻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지요?
......
2009년 초겨울 김려령
-> 나는 저자의 말에 공감했다. 이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나는 나의 생을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붙잡았던 것이 종교(기독교)를 통해 스스로 가진 '신념'이였다는 점이 다르지만 말이다.
나의 사춘기는 중학교때 찾아왔다. 그리 대단할 것 없던 외모와 심한 아토피, 그리고 뒤떨어지는 운동신경은 한참 스스로를 돌보고 가꾸기에 바쁜 소년에게는 버거운 것이었다. 스스로 자신감을 가지기에는 벅찼으니깐. 그럼에도 나는 남들에 비해서 공부를 잘했다는 점에서 스스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훗날 그것도 용이하지 않게 되었지만 말이다.
버거웠었다. 매일매일,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즐거웠을리 없었다. 하루하루가 지옥같았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저 시간만이 흘러가주기를 바랬던 적도 있었고 말이다. 고1 겨울방학 직전이었지 싶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울증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시험 스트레스로 인한 심한 아토피로 고생하고 있었고, 겨울이었기에 햇살은 충분하지 않아서 으쌰으쌰 힘을 내기에도 도움이 안되는 상황이였기도 했고 말이다.
그랬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아픔의 고통은 인생에 있어서 짧은 시간이었을지 모르나, 그 그림자는 지나치게도 길었다. 나는 잊고자 했다. 필사적으로. 그러나 완벽히 잊혀졌던 것은 아니었다. 저자의 말처럼 기억이란 악착같이 살아남고자 하는 녀석이라 그런지도 모를일이고.
한편 나는 기억이란 녀석에 대한 또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내가 지우기 원하는 아픈 기억만 깔끔히 잊혀지기를 바랬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내가 잊고 싶은 기억 하나를 지우기 위해서는 내가 간직하고 싶은 기억 하나도 함께 지워야만 했다. 그것은 내게 크나큰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그냥, 감싸안지도 맞서 싸우지도 못하고, 애써 회피하며 지우려할 수 밖엔 없었던 거라고.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음에도 나는 지금까지도 살아있다. 앞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라 해도 말이다. 그것은 저자의 말처럼 나를 지치고 쓰러지게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분명히 내 곁에서 나를 아껴주었던, 우아한 말이 아니라 진심어린 말을 해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기숙사 친구들, 교회 친구들과 선생님, 대학교에 들어서 가서는 동아리의 친구들과 선배님-영적 엄마 아빠 역할을 해주셨던 리더-들. 그들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어찌 되었을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살아있더라해도 분명 좋은 결과는 아니었을테지. 나는 감정기복이 있는 인간이니깐 말이다.
"잘 지내고 계시지요?" "네, 저는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자의 따스한 물음에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만 같다. 그럭저럭... 저자가 이 말을 듣는다면 참으로 아쉬워할테지만, 사실 나는 너무나도 인생에 시달려버려서인지 커다란 즐거움과 슬픔이 아닌 이상 대수롭지 않은 그저그런 것으로 느끼기 때문에 우아한 말이 아닌 진심어린 말을 하라면 이렇게 밖에는 못할 것 만 같다.
영화, 버스정류장의 한 대사처럼, (무의식적으로) '혹시나' 해서 인생을 살아가는 나에게 매일같이 '역시나'만 일어나는 하루하루는 지겹기만 하다. 남들이 충고하는대로 '인생의 목표'를 가져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진통제와 같아서 일시적인 효과밖엔 가져다 주지 못했다. 늘상 물음표? 투성인 하루를 살고, 인생을 살아가지만 그에 대한 시원한 대답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언제쯤 나는 우아한 답변이 아닌 진심어린 답변을 들을 수 있게 되는 걸까, 나의 삶에게, 내 자신에게 말이다.
이런 시크하고 우울한 말만 하고 있다간 이 글을 읽는 나의 사랑하는 이들에게 걱정을 끼칠까 염려스럽다. 그래서 마지막은 훈훈하게 마무리 하려고 한다. 저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