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 서적과 같이 어떤 교훈과 정보습득이 목적이 아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소소하지만 얼마나 큰 즐거움인가.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하기가 어려워진 지금에는
책을 통해서라도 만남의 기쁨을 느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책은 '비인격적 실체'가 아닌가라고 비난할 지도 모르겠다만,
사람이라고 꼭 '인격적'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독서노트 시작, 독서후감]
오늘 읽은 이 책은 저자 장영희님의 마지막 책이다.
장영희님은 어릴적 소아마비로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었고
서강대학교 영문학과 교수이기도 여러 수필의 저자이기도 했다.
(* 지금 알아보니 유고집인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가 나왔단다. 2010.5월 31일)
책이 출간되기 일주일 전쯤인 2009년 5월 9일, 그는 암-3차: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전에 치료했었던 암-1차:유방암, 2차:척수암-이 간암으로 재발하였기 때문이었단다.
2008년 암이 재발하여 1년가량 투병을 했지만, 끝끝내 다시는 강단에 서지 못했단다.
그것은 그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
무얼 그리도 잘 못 한 것이 있었길래 이런 고통을 겪어야 했을까.
나는 이리도 안타까운데, 그의 말에서는 전혀 아픔이 묻어나질 않는다.
(비록 이 책이 마지막 투병전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객관적'으로 보아도 그의 삶이 순탄치 않았음은 명백하지 않은가.)
오히려 안타까워하는 내 모습이 그에게 더욱 죄송스러운 것이리라.
그것은 더이상 그의 '아픔'이 아니라 '감사함'이었기 때문이다.
감사함....
어찌 감사할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일이다.
나는 육체의 조그마한 가시-아직도 완치되지 않은 아토피성 피부염-로 인해 이리도
불평하고 있는데 말이다. 몸이 조금이라도 아프게 되면, 이에 영향을 받아 기분도 나빠지는데 말이다.
조금더 나이를 먹게되고, 내가 가진 모습 전부를 내것으로 인정할 수 있게 되면
아마 감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처럼.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이 책의 제목. 여기에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에는 '쉼표'를 앞으로 살아갈 날에는 '느낌표'를 달아봤다.)
지금까지 별탈없이 살아온 것이 '기적'적인 것이었다면,
한치앞도 볼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앞으로 살아갈 날은 더 놀랄만한 '기적'이 아닐까!
나는 그녀가 말한 '삶의 기적' 속에 지금 이 순간을, 오늘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 내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그리고 "나쁜 운명을 깨울까봐 살금살금 걷는다면 좋은 운명도 깨우지 못할 것 아닌가.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 가며 저벅저벅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살 것이다."라 했던 그녀의 말을 기억하자. 가슴을 펴고 당당해지는 거다. 살아있다는 것은 기적이 아닌가. 아파하기에는, 스스로 자신을 괴롭히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시간들이다. 이를 뼈져리게 깨닫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인 것이다. 이 아름다운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지 말자. 조금더 내 마음속에 이 아름다움을, 생명력이 가져다 주는 삶의 기적을 담아보는 것이 좋겠다. 그저 감사함으로, 오늘 하루도 충실히 살아가자. 존재의 무게를 가지고서...!
[내용정리]
1. 다시 시작하기
p.20
"절망과 희망은 늘 가까이에 있었다는 것, 넘어져서 주저앉기보다는 차라리 다시 일어나 걷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배웠다."
→ 한번 주저 앉아버리면 다시 일어나기 싫은 법이다. 차라리 일어나 터벅터벅 걷는 것이 바람직한 거겠지...
2. '미리' 갚아요
p.22
"내 삶은 '미리'라는 단어가 주는 안도감, 평온함과는 거리가 멀고, 언제나 '하루만 더, 아니 몇 시간만 더, 아니 한 시간만 더.....'라는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 있다."
→ 저자만 그럴까, 나도 그렇다. 허나 이미 지나간일은 할 수 없는 법이다. 하기 싫더라도 미루지 않고 지금 즉시 행하는 것이 훗날 보았을 때 '미리'하는 것이리라... 생각해본다.
"실제로는 하지 않으면서도 내내 불편하고 놀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 가까스로 시간에 맞춰 아슬아슬하게 일을 하고 나면 다음번엔 꼭 미리 해야지 다짐하지만 그게 생각처럼 안 된다."
→ 미루기란 이래서 무서운거다. '지금 당장'이란 말 밖엔!!
* 소설, '미리 갚아요'(Pay it Forward) (캐서린 하이드)
- 캐서린 하이드가 몰고 가던 트럭에 갑자기 불이 붙자 어디선가 건장한 남자 두 명이 도와주기 위해 뛰어온다. 하지만 당황한 하이드는 본능적으로 그들이 자신을 해치려는 줄 알고 오지 말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두 남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불을 꺼주었고, 그녀가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그들이 가버린 후였다. 결국 그녀는 감사하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죄의식을 느낄 정도로 미안하기 이를 데 없었다.
생각 끝에 그녀는 어제부터 은혜를 '미리' 갚기로 했다. 즉, 이미 입은 친절에 대해 빚을 갚을 수 없다면, 앞으로 살아가며 입을 은혜에 대한 감사와 보답을 미리 행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작은 친절과 도움을 베풀기 시작하고, 이를 내용으로 '미리 갚아요'라는 소설을 쓴다.
- 비교 :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Pay It Forward)
3. 루시 할머니
p.28
'운명의 장난으로(by twist of Fate)'
p.30
'운명의 장난'은 항상 양면적이야. 늘 지그재그로 가는 것 같아. 나쁜 쪽으로 간다 하면 금방 '아, 그것이 그렇게 나쁜 건 아니었군'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일이 생기거든.
→ 전화위복, 새옹지마
→ 모든 것이 늘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가진 약점도 때로는 그에 대해 '득'을 보는 경우도 있으니깐 말이다.
* 새옹지마
- 새옹지마 [塞翁之馬] 변방에 사는 늙은이란 뜻. 塞 - 변방 '새' 翁 - 어르신 '옹' 之 - 갈 '지' 馬 - 말 '마'
- 의미? 인생은 좋은일이 있으면 나쁜일이 있고, 나쁜일이 있으면 좋은일이 있다라는 뜻으로 사용.
- 유래?
중국 국경 근처에 늙은이가 살고 있었는데, 그가 기르던 말이 국경을 넘어 오랑캐 족이 사는 곳으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이를 보고 위로하자 늙은이는 '이게 복을 가져 올런지 모른다'면서
낙심하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몇 달후 이 말이 또 다른 말 한마리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이에 동네 사람들이
축하를 하자 늙은이가 '이게 화를 가져올런지 모른다'면서 기뻐하지 않았답니다.
그러다 집에 있던 아들이 이 말을 타고 놀다가 말에서 떨어져 그만 다리가 부러져 장애인이 되었답니다.
이에 동네 사람들이 위로를 하자 늙은이는 '이게 복을 가져 올런지 모른다'면서 낙심하지 않았답니다.
세월이 지나 변방의 오랑케와 전쟁이 나서 젊은이를 강제 징집하게 되었는데 이 늙은이의 아들은
장애인이라 전쟁에 나가지 않고 같이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만일 전쟁에 나갔다면 전사했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소금 3퍼센트가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듯이 우리 마음 안에 나쁜 생각이 있어도 3퍼센트의 좋은 생각이 우리의 삶을 지탱해 준다.
→ 크고 좋은 생각을 하자. 생각하는데로 사람은 살아가기 마련이니깐...
6. 사랑을 버린 죄
p.46
영국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은 말했단다. "사랑하고 잃는 것이 사랑을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It is better to have loved and lost than not th have loved at all)"라고.
→ 사랑? 나는 너무나 신중하다. 그냥 만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나 경험삼아 만나볼까? 그럴 수 없고, 아무나 그저 예쁘면 OK?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그에게 책임을 갖고 헌신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럴 마음이 들만한 분이어야 할 것이고, 그분에게도 내가 그런 존재여야 하겠지만... (매력을 말하는 것임!)
"사랑의 순환처럼 세월도 흘러 어느덧 찰스 강에 낙엽이 하나 둘씩 떨어진다. 치열했던 여름이 지나고 월든 호수에 비친 단풍나무가 가슴 저리도록 아름다운 가을이 왔다. 또한 가을은 찬란한 신파의 계절! 스산한 바람 속에서 떠난 사람을 생각하면서 눈물 한 방울쯤 떨어뜨려도 괜찮을 것 같은 계절이다.
그리고 사랑을 버린 사람이든 사랑에 버림받은 사람이든, 다시 한 번 가슴 아프게 떠올리며 보석 같은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랑의 추억이 있다는 것은 이 가을에 한껏 누릴 수 있는 커다란 축복이다."
→ 그놈의 사랑! 용기가 있어야 하며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리라...
7. 20년 늦은 편지
p.52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곳의 삶을 마무리 하고 떠날 때 그들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못 다한 사랑을 해주리라는 믿음, 진실하고 용기 있는 삶을 살아주리라는 믿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 주리라는 믿음, 우리도 그들의 뒤를 따를 때까지 이곳에서의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리라는 믿음 - 그리고 그 믿음에 걸맞게 살아가는 것은 아직 이곳에 남아 있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 이러한 마음으로 내 삶을 마무리 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p.53
영국작가 새뮤얼 버틀러, '잊히지 않은 자는 죽은 것이 아니다'
→ 그리고 살아있음에도 잊혀지는 사람은 죽은 것과 다름 없는 거겠지.
나는 살아있는 걸까?
8. '오늘' 이라는 가능성
p.59
마크 트웨인, '오늘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There's nothing that cannot happen today)
→ 그렇기에 '혹시나'하고 기대해 볼 만한 하루 아닌가. 그러나 대개는 '역시나'로 끝나기 마련이지만 말이다.
p.60~61
'오늘'이라는 시간의 무한한 가능성 - 잘난 척하며 살던 장영희가 어느 날 갑자기 암에 걸려 죽을 수 있다. 하지만 병을 통해 조금 더 겸손해지고, 조금 더 사랑을 배우고, 조금 더 착해진 장영희가 바로 오늘 성공적으로 항암 치료를 끝내고 병을 훌훌 털고 일어날 수도 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면 헛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늘 반반의 가능성으로 다가오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열심히 살아간다.
→ 삶에 대한 올바른 믿음과 신뢰를 갖고, 그에 따라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한다면 조금더 아름다운 삶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래, 나에겐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즉 가능성이 있고 이러한 가능성은 내 삶을 변혁 할 수 있다는 것에까지 이어진다.
9. 아름다운 빚
p.67
늘 의도와는 달리 남에게 용서받을 일을 하게 되지만, 성서에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루가 7장 47절) (쉬운성경에는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고 되어있다.) 라는 말이 있듯이, 그렇게 나의 잘못을 용서받으면 내가 더욱더 사랑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그래서 아름다운 빚을 갚을 의지를 더욱 다지게 될지도 모른다.
→ 그래, 나도 그러했으니깐. 아직은 더많이 용서를 받아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이에는 큰교훈이 있다.
10. 와, 꽃 폭죽이 터졌네!
p.74
"우리는 때로 마이클처럼 마음속의 어린아이를 부끄러워한다. 아니, 무섭게 덤벼드는 세파와 싸워 이기고 살아남는 길은 내 속의 어린아이가 나오지 못하게 윽박지르고 숨기고, 딱딱하고 무감각한 마음으로 무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짓눌러도 우리 마음속 어린아이는 죽지 않는다. 아무리 숨겨도 가끔씩 고개를 내밀고 작은 일에도 감동하는 마음, 다른 이의 아픔을 함께 슬퍼하는 마음으로 우리 가슴을 두드린다. 아무리 무시해도 가끔씩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와! 되게 예쁘다"감탄하고, 함께 행복해하고 있어한다.
이 찬란한 계절은 오랜만에 한번 하늘을 쳐다보고, 주위를 둘러보고, 우리 마음속 어린아이가 자유롭게 "와!" 하고 감탄하도록 내버려 두기 좋은 때 같다.
→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다. 하늘을 볼 여유가 사라지고, 꽃내음을 맡아볼 시간이 거의 없음에도 말이다. 왠지 모를 부끄러움,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을 가지는 순간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할 지 모른다는 두려움. 어느새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버린 '경쟁' 때문에 한치의 틈이라도 보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자유로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게 되어버린 우리 '어른'들의 삶이 불쌍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11. '늦음'에 관하여
p.76
내가 늦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이를테면 늦잠을 잤거나, 괜히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아 미적거리거나, 이제껏 하기 싫어 미루던 일을 약속 시간 바로 전에 새삼스러운 결의로 시작하거나, 또는 TV를 보다가 프로그램이 너무 재미있어서, 아니면 재미없어도 참고 이제껏 보고 있던 것이 억울해서 끝날 때까지 보려는 마음에서다. 아니, 때로는 잘 늦기로 평판이 나 있는 내가 정각에 도착하는 것이 괜히 자존심이 상한다거나 혹시 상대방이 나보다 늦게 도착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다.
→ 이것보고 빵! 터졌다. 스스로가 늦는 이유에 대해서 조근조근 분석해보았다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고, 그녀가 분석한 것들 중에 내게도 해당되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하하하!
마음의 문제, 잘 보이기 위해 옷 등에 신경쓰는 경우(?), 갑자기 해야 할 것들이 눈에 보이는 경우,
다른 이와의 만남이 아쉬워 다음약속이 있음에도 쉽게 못헤어질 때 등
p.78
늦는 것과 느린 것은 분명히 다르다.
→ 착각하지 말아야 겠다만, 나는 분명 둘다일 거다.
12. 못했지만 잘했어요
p.82
'옥시모론oxymoron' = '모순형용법'
→ 몰랐던 단어, 혹은 용어였기에 정리해봤다. 못했지만 잘했어요는 옥시모론의 좋은 예이다.
p.85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 다 진호 못지않은 모순형용법 구사가들인지도 모른다. 정말 착한 마음을 먹었다가도 슬며시 '에라, 나만 착하게 산다고 누가 알아주나, 아무렇게나 살자' 나쁜 생각을 품기도 하고, 다시 '아니, 그래도 인간인데, 인간답게 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뿐인가,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볼 수 있는 사람과 볼 수 없는 사람, 기쁜 사람과 슬픈 사람 등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치고받고 싸우기도 하지만, 결국 또 서로 보완하고 도와 가며 함께 어울려 그런대로 한세상 잘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이 세상이야말로 제일 좋은 모순형용법의 예이다.
→ 이 세상이야 말로 제일 좋은 모순형용법의 예이다. 알다가도 모를 일...
14. 침묵과 말
p.91
사실 동서고금을 통해 '침묵은 금이다' '적게 말할수록 후회가 없다' 등 말은 적게 할수록 좋고 꼭 필요한 말만을 골라서 해야 한다고 무수히 강조해 왔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말만 골라서 하고 침묵을 지키고 산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세상이겠는가. 가끔은 실없는 소리를 해서 웃기기도 하고, 화가 나면 혼자 누군가를 향해 욕도 해보고, 실속 있는 결과가 없더라도 잡담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세상 사는 재미 아닌가.
→ 말은 해야, 또한 고기도 뜯어야 맛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겠는가. 누구나 말을 하는 것을 즐거워 하고, 특히나 누군가 자신의 말을 열심히 들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허나 그렇게 잘 통하는 사람이 잘 있지도 않고, 나 자신 스스로의 체면 때문에 실없는 소리를 하기에도 뭣하고 하니, 이럴 때일 수록 마음편히 이야기 할만한 소위 믿을만한 사람들 혹은 친구들이 절실히 필요한 때인 것이다.
한편 듣는 것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다. 사실 나는 말주변이 없는 편이라, 말을 재미있게 잘 하는 편이 아니다. 따라서 말하기 보다는 오히려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을 즐길 때가 많은데, 이야기 듣기를 즐기는 편임에도 힘들 때가 많다. 그것은 바로 말하는 사람이 듣는 이를 전혀 배려하지 않을 경우 종종 발생한다. 자기가 하는 이야기에 너무나 몰입한 나머지, 그 많은 말들을 듣고 있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리라. 숨돌 릴 순간도 없이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말들은 듣는 이인 나로 하여금 질리게 한다. 조금 여유를 갖고, 내가 잘 듣고 있는지 물어봐주고, 내 생각은 어떤가 물어봐주고 하면 좋을텐데 말이다.
말을 하거나 말하는 것을 들을 때 제일 고민되는 부분은 '말의 주제'에 대한 것이다. 서로의 관심사일 경우 이야기를 꽤나 즐겁게 끌어갈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힘든 대화가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럴 때는 듣기는 들으나 건성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있으며, 혹은 다른 대화로 주제 변화를 시도하거나 아예 침묵해버리기 일 수 이다. 그러므로 이야기를 할 때는 듣는 이를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그가 정말 흥미있어 하는 지를 살피고, 그렇지 않다면 다른 주제로 넘어가보는 것이 좋겠다. 특히 그에 관한 이야기 주제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15. 돈이냐, 사랑이냐
p.96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있는가이지, 무엇을 먹고 어디를 가는가는 중요하지 않단다. 사랑하는 사람과 있으면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언제나 행복할 수 있을 거야. 오직 돈 때문에 지금 남자 친구와 헤어지면 먼 훗날 후회하게 될 거야. 돈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니니깐."
→ 고전적인 이야기이다... 좀 이상적이다...
p.99
"누구나 돈이 있느냐 없느냐를 즉각 감지하고 그에 따라 상대방에 대한 태도를 정하는 이런 세상에서, 앞문으로 들어오는 가난에 밀려 사랑이 옆문으로 새는 것을 막을 수가 있을까."
→ 좀더 현실적인 이야기다... 슬픈일이지만.
17. 무위(無爲)의 재능
p.106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
→ 이런 것도 능력이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매순간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하고, 정보를 습득하기 바쁜(혹은 정보를 습득할 수 밖엔 없는) 세상에서 생각을 비우고, 마음을 비우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 될 것 같긴 하다.
p.109
엘리엇T.S. Eliot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차라리 악을 행하는 것이 낫다. 그것은 적어도 살아 있다는 증거이니까'라고 말했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차라리 악을 행하는 게 낫다는 것은 너무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다른 말로 하자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살아 있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 그래. 뭐라도 뭐라도 뭐라도 저질러 버려?!
18. 무릎 꿇은 나무
p.115
"사람이면 누구나 다 메고 다니는 운명자루가 있고, 그 속에는 저마다 각기 똑같은 수의 검은 돌과 흰 돌이 들어 있다더구나. 검은 돌은 불운, 흰 돌은 행운을 상징하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일은 이 돌들을 하나씩 꺼내는 과정이란다. 그래서 삶은 어떤 때는 예기치 못한 불운에 좌절하여 넘어지고, 또 어떤 때는 크고 작든 행운을 맞이하여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서는 작은 드라마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아마 너는 네 운명자루에서 검은 돌을 몇 개 먼저 꺼낸 모양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남보다 더 큰 네 몫의 행복이 분명히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삶은 누구에게나 다 평등한 것이리라. 잘은 알지 못해도, 우리가 그리도 죽고 못사는 돈도 외모도 우리를 영원히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안전장치는 아니리라... 그래도 아쉬운건 아쉬운건가 보다.
" 로키산맥 해발 3,000미터 높이에 수목 한계선 지대가 있다고 한다. 이 지대의 나무들은 너무나 매서운 바람 때문에 곧게 자라지 못하고 마치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한 채 서 있단다. 눈보라가 얼마나 심한지 이 나무들은 생존을 위해 그야말로 무릎 꿇고 사는 삶을 배워야 했던 것이지. 그런데 민숙아,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이 '무릎 꿇은 나무'로 만든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온갖 매서운 바람과 눈보라 속에서 나름대로 거기에 순응하는 법을 배우며 제각기 삶을 연주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큰일을 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성경에 사도 바울이 나온다. 그는 로마 시민이었으며, 그 시대 최고의 지식인이였다. 그런 그에게 약점아닌 약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간질환자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에게는 큰 약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서 분명 그가 얻은 것이 있으리라. 그것은 바로 '겸손함'이었을 것이다. 그 병으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교만하지 않을 수 있었을 거다. 인간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교만함을 꺽게 만들어 준 것이 육체의 병이 아니었을까. 그런 점에서 나는 바울과 닮아 있는 건지도 모른다. ^_^;
19. 내가 살아보니까
p.119
"내가 살아 보니까 정말이지 명품 핸드백을 들고 다니든,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든 중요한 것은 그 내용물이라는 것이다. 명품 핸드백에도 시시한 잡동사니가 가득 들었을 수 있고 비닐봉지에도 금덩어리가 담겨 있을 수 있다. 물론 이런 말을 해봤자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이상한 궤변 말라고 욕이나 먹겠지만, 내가 살아 보니까 그렇다는 말이다.
내가 살아 보니 남들의 가치 기준에 따라 내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시간 낭비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가치를 깍아 내리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 줄 알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결국 중요하지 않은 것을 위해 진짜 중요한 것을 희생하고, 내 인생을 잘게 조각내어 조금씩 도랑에 집어넣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도 어렸을 때 주위 어른들의 겉모습, 그러니까 어떻게 생기고 어떤 옷을 입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다고 할 때 코웃음을 쳤다. 자기들이 돈 없고 못생기고 능력이 없으니 그것을 합리화하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가 살아 보니까 정말 그렇다. 결국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고 알맹이다.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은 TV에서 보거나 거리에서 구경하면 되고 내 실속 차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재미있게 공부해서 실력 쌓고, 진지하게 놀아서 경험 쌓고, 진정으로 남을 대해 덕을 쌓는 것이 결국 내 실속이다.
내가 살아 보니까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은 밑지는 적이 없다. 내가 남의 말만 듣고 월급 모아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한 것은 몽땅 다 망했지만, 무심히 또는 의도적으로 한 작은 선행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속에 고마음으로 남아 있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1분이 걸리고 그와 사귀는 것은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릴 잊어버리는 것은 일생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남의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다."
→ 긴말이 필요 없다! 내 마음이 이미 기울었다면, 그런 방식으로 삶을 살아 내기만 하면 된다.
20.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p.126
상갓집에 가면 보통 육개장, 송편, 전 등 자금자금한 음식들이 나오고 상추쌈이나 갈비찜 같은 음식은 나오지 않는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상갓집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먹는 것은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련을 남긴 채 이 세상을 하직하고 이제는 아무리 하찮은 음식일지라도 먹을 수 없는 망자 앞에서 보란 듯이 입을 쩍 벌리고 어적어적 먹는 것은 무언無言의 횡포라는 것이다.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 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그 소망이 오늘 하루도 살아가게 하는 것일런지.
21. 괜찮아
p.131
"그만하면 참 잘했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 너라면 뭐든지 다 눈 감아 주겠다는 용서의 말,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네 편이니 넌 절대 외롭지 않다는 격려의 말, 지금은 아파도 슬퍼하지 말라는 나눔의 말, 그리고 마음으로 일으켜 주는 부축의 말, 괜찮아."
"아, 그래서 '괜찮아'는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의 말이다."
→ '괜찮아'라는 말을 들어본지가 언제였는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괜찮다라고 되뇌일 뿐이었다. 내 인생에서, 사실 우리 모두의 인생에서 결국 모든 문제와 맞서 싸우는 존재는 자기 자신일 수 밖엔 없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의존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대신해달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꽤나 어릴 적부터 내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다. 한 때는 그것에 대해 질려버린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래야 앞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괜찮다. 혼자여도 괜찮고, 혼자 싸울 수 밖엔 없어도 괜찮다. 적어도 내 자신은 내 편일테니깐.
22. 너만이 너다
p.137 '나'에 관한 인용문
- 모든 사람은 '이 세상은 나 때문에 창조되었다'라고 느낄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탈무드)
- 당신이 동의하지 않는 한 이 세상 누구도 당신이 열등하다고 느끼게 할 수 없다. (엘리노어 루스벨트)
- 스스로와 사이가 나쁘면 다른 사람들과도 사이가 나쁘게 된다.(발자크)
- 다른 사람만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에리히 프롬)
- '너만이 너다' - 이보다 더 의미있고 풍요로운 말은 없다.(셰익스피어)
23. 뼈만 추리면 산다
p.141
"아무리 운명이 뒤통수를 쳐서 살을 다 깎아 먹고 뼈만 남는다 해도 울지 마라, 기본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살이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시간에 차라리 뼈나 제대로 추려라. 그게 살 길이다.
"과거에 그들이 환상 속의 슈퍼맨이었다면 이제 그들은 진짜 슈퍼맨이 되었다. 우리 보통 사람들은 오래된 상처까지 이리저리 들추어내고, 그 상처가 없어질세라 꼭 끌어 안고, 자신은 상처투성이라 아무것도 못 한다며 눈물 흘리고 포기하는데 이들은 여전히 꿈과 희망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 2001년에 쓰다.
"나에게 기적은 다시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와 하루 하루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삶은 날마다 기쁨이고 기적입니다. " - 크리스토퍼 리브
28. 나는 아름답다.
p.167
"그런 연예인들이 간혹 성형 사실을 밝힐 때마다 신문이나 TV는 '아무개는 당당하게 성형사실을 고백했다'라는 말을 쓴다. 헌데 나는 그게 아주 못마땅하다. '당당하게'는 그런 데 쓰이는 말이 아니다. '당당하게'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어려움을 극복하여 어떤 옳은 일을 실행할 때 쓰는 말이다. 예컨대 '그녀는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싸웠다'라고는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안 해도 좋을 성형 수술을 하고 나서 성형 수술 했다고 말하는 사람을 '당당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좀 말의 번지수가 틀린 셈이다.
→ 맞는 말이다. 성형 수술을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나 '당당하다'라는 말을 마음대로 가져다 쓸 수는 없는 법이다. 제발 단어를 함부러 사용해서, 그 의미를 퇴색시키지 말자.
p.169
"그래서 난 생각했다. 생긴 거야 어떻든 내 눈 코 입이 제자리에 있어서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그리고 우리 인체란 생긴 그대로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로워서, 자연의 법칙에 모든 것을 맡기고 주름이야 생기든 말든 웃고 싶을 때 실컷 우하하하 웃으며 나의 이 기막힌 아름다움을 구가하며 살면 그만이라고."
30. 네가 누리는 축복을 세어보라(Count Your blessings)
p.179
"장애인이 '장애'인이 되는 것은 신체적 불편 때문이라기보다는 사회가 생산적 발전의 '장애'로 여겨 '장애인'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못 해서가 아니라 못 하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그 기대에 부응해서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신체적 능력만을 능력으로 평가하는 비장애인들의 오만일지도 모른다.
→ !!
31. '오보' 장영희
p.187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름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장미'라고 부르는 것은 그 어떤 이름으로라도 여전히 향기로울 것을."
맞다. 향기 없는 이름이 아니라 향기 없는 사람이 문제다.
→ 푸르게 꽃피우는 삶을 살아내자..
33. 너는 누구냐?
p.195
"-하려다가 말아버린, 내 의도와는 다르게 빗나가고 좌절된 꿈만이 무성한 것이 내 삶이다."
p.196
토마스 머튼 이라는 신학자는 "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의 참된 기쁨은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고 '자기'라는 감옥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36. '좋은' 사람
p.211
나는 새삼 '좋은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정말 누구의 마음에 '좋은 사람'으로 남는 게 얼마나 힘들고, 소중한지 깨닫기 시작한다.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따뜻한 마음, 아끼는 마음으로 날 '좋은 사람'으로 기억해 준다면 수천 수만 명 사람들이 다 아는 '유명한' 사람이 되는 일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삶을 다하고 죽었을 때 신문에 기사가 나고 모든 사람이 단지 하나의 뉴스로 알게 되는 '유명한' 사람보다 누군가 그 죽음을 진정 슬퍼해 주는 '좋은' 사람이 된다면 지상에서의 삶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모든 사람이 알아봐 주고 대접해 주는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래도 간혹 범서(조카)처럼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그나마 그 온기로 세상이 뒤뚱뒤뚱 돌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 좋은 사람...
37. 스물과 쉰
p.215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먹는 것도 다른 '별종'이 되어 가는 일인가. 돌이켜 보면 나도 스무 살 때쯤엔 쉰 살 먹은 사람들을 보면 스무 살이 나이 먹어 저절로 쉰 살이 되는 게 아니라 애당초 쉰 살로 태어나는 무슨 별종 인간들처럼 생각했다. 눈가의 잔주름과 입가의 팔자주름을 짙은 화장으로 필사적으로 감추고, 단순히 생물학적 연륜만으로 아무 데서나 권위를 내세우고, 자신의 외로움을 숨기려 일부러 크게 웃고 떠들고, 가난한 과거에 진 원수를 갚듯이 목젖이 다 보이게 입을 쩍벌리고 밥을 먹는, 조금은 우스꽝스럽고 조금은 슬픈 존재들.....
어떤 이들은 나이 들어가는 일이 정말 슬픈 일이라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나이 들어가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고 노년이 가장 편하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살아 보니 늙는다는 것은 기막히게 슬픈 일도, 그렇다고 호들갑 떨 만큼 아름다운 일도 아니다. 그야말로 젊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냥' 하루하루 살아갈 뿐, 색다른 감정이 새로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또 나이가 들면 기억력은 쇠퇴하지만 연륜으로 인해 삶을 살아가는 지혜는 풍부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실감이 안 난다. 삶에 대한 노하우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삶에 익숙해질 뿐이다. 말도 안 되게 부조리한 일이나 악을 많이 보고 살다 보니 내성이 생겨, 삶의 횡포에 좀 덜 놀라며 살 뿐이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나이 들어가며 내가 새롭게 느끼는 변화가 있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세상의 중심이 나 자신에서 조금씩 밖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나이가 드니까 자꾸 연로해지시는 어머니가 마음 쓰이고, 파릇파릇 자라나는 조카들이 더 애틋하고, 잊고 지내던 친구들이나 제자들의 안부가 궁금해지고,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이 더 안쓰럽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나뿐만이 아니라 남도 보인다. 한마디로 그악스럽게 붙잡고 있던 것들을 조금씩 놓아 간다고 할까, 조금씩 마음이 착해지는 것을 느낀다.
결국 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은 인간의 패기도, 열정도, 용기도 아니고 인간의 '선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 자체에 대한 연민, 자신뿐아니라 남을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선함이 없다면, 그러면 세상은 금방이라도 싸움터가 되고 무너질지 모른다.
39. 나의 불가사리
p.228
의사에게 환자는 개개인이 아니라 '환자'라는 무더기 집합체인 것이다. 환자는 그냥 의사라는 업을 수행하는 대상일 뿐 장영희, 김철수 등의 서로 다른 생각, 다른 마음을 가진 개개인이 아닌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학생을 대하면서 이경순, 고서정, 김원민, 등 개개인의 아픔, 고민,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학생'이라는 집합 개념의 추상적 그룹으로 묶기 때문이다. 나역시 내가 업으로 하는 교수라는 직책에 더 초점을 둘 뿐, 그들의 하나하나 희로애락의 마음을 가진 개별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
거센 폭풍우가 지나간 바닷가에 아침이 왔다. 어젯밤 폭풍우로 바다에서 밀려온 불가사리들이 백사장을 덮었다. 태양이 천천히 잿빛구름을 뚫고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한 남자가 해변을 걷고 있는데 열 살 정도의 어린 소년 하나가 무엇인가를 바다 쪽으로 계속 던지고 있었다. 남자가 다가가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자 소년이 답했다.
"이제 곧 해가 높이 뜨면 뜨거워지잖아요. 그럼 여기 있는 불가사리들이 모두 태양열에 죽게 될 테니까 하나씩 바닷속으로..."
남자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소년을 보고 말했다.
"얘야, 이 해변을 봐라. 폭풍우로 밀려온 불가사리가 수를 셀수 없을 정도로 이렇게 많은데 네가 하는 일이 무슨 도움이 되겠니?"
소년은 아닌게 아니라 생각해보니 그렇다는 듯, 잠시 하던 일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문득 다시 불가사리 하나를 집어 힘껏 바다를 향해 던졌다. 불가사리는 첨벙 소리와 함께 시원스럽게 물속으로 들어갔다. 소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적어도 제가 방금 바닷속으로 던진 저 불가사리에게는 도움이 되었겠지요."
'무더기' 불가사리 중에서 요행히 그 소년이 바닷속으로 보내준 그 불가사리는 생명을 건진 셈이다. 그리고 그런 불가사리가 하나씩 둘식 모이면 결국 '무더기' 불가사리가 되는 것이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 한다는데 그갓 한 명 도와준다고 세상 달라질 것 있나 했던 생각은 '무더기 환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무더기 학생'들을 가르치며 살아가는데 익숙한 내가 한, 참으로 알량한 생각이었다. 올해 내 계획은 주변의 '무더기' 사람들, '무더기' 학생들 중에서 한 명씩 끄집어내서 '나의 불가사리'로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무더기 환자'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 내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