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독창적인 소설은 관찰된 사건의 재해석을 통해, 아주 유쾌한 결론을 내어 놓는 소설이다. 과거 일어났던 사건을 뒤집어 재해석해냄으로써 색다른 발상이 주는 유쾌함을 독자들에게 준다. 이 유쾌함은 소설의 독특한 서술구조뿐만 아니라, 현실세계에 대한 발칙한(?) 반항적 해석으로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함으로써 더욱 배가 된다.
도중에 쓸데 없는 군더더기같은 내용이 있다는 점은 아쉬우나, 이런 내용들도 결말을 위한 장치였다고 생각할 때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읽어보라. 그러면 아마 후회는 없을 것이다.
-> 너무 어려운 것은 아닐까.
솔직한 심정으로는. 나는 이 책이 마음에 든다. 그것은 프로의 세계에서 도퇴되어 버린 듯한 나 자신에 대한 위로이기도. 또한 너무나도 숨막힐 것 같은 경쟁에 대해 비판해주는 동지이기도 해서랄까.
어쩌면 나는 나의 무기력함을 이 책을 통해 정당화하려 했는지도 모를일이다. 허나 그럼에도 나는 체질적으로 경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저 남보다 더 잘해야지만 인정받는 세상보다, 그저 나로써 인정 받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저 '나'로써 말이다. 즉 우리 각자가 각자의 존재 그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나저나 취업 준비생으로서의 나는, 좀더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도퇴되는 걸까? 그것으로 인생의 실패자가 되어야 하는걸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나의 세상은 나의 생각과 의지로 인해 만들어 지는 것이었으니깐. 허나, 내 자신의 무능력함을 무조건적으로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어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헨리데이빗 소로우나 법정스님과 같은 삶은 되지 못하겠지만, 조금은 비슷한 삶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그러기엔 내가 가진 것이 너무나 많고, 내가 갖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구나 싶다.
아, 내 자신의 분수를 알아야 한다. 아직까지 그나마 젊은 나는 멋도 모르는 패기란걸 가지고는 있나보다. 그러나 그럼에도, 만만치 않을 세상과 사회에 대한 혼자만의 공상은 버려야 하지 않을까. 나처럼 어리버리한 사람이 큰 대기업과 같은 곳에서 똑부러지게 일을 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내가 나아갈 곳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기 위해, 나는 사람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결국 나는 HRD와 관련된 업무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포기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뭔가 모양빠지지 않은가.
처음부터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해보는 것은 어떤가. 그럴만한 용기가 내게 있는가?
나는, 나는 말이다, 낮은 자의 길, 사회적인 약자가 되는 길, 자발적 가난에 동참하는 삶,
이런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것은 또다시 나의 질문이 되었다...
2. 내용정리
p.29
"명심해라, 경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버지의 그 말씀을 끝으로 그 작지만 방바닥이 따뜻하고, 창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 횟집의 방 안에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셨다. 당연히 그곳에는 - 마치 내가 헤쳐가야 할 세상과도 같은 - 끝없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파도들은 과연 심한 몸싸움을 벌이며 아버지의 말처럼 쉴 새 없는 경쟁을 펼치는 듯했고, 그 격렬한 해면(海面)을 보고 있자니 더할 나위 없이 마음이 답답해져오는 것이었따. 어쨌거나 다들 저 바다를 헤치며 살아온 것이다, 혹은 살아갈 것이다. 파를 콧구멍에 끼우거나, 고등학교 동창에 굽실거리며, 조지 워싱턴도, 링컨도, 인천법원의 김판사도, 한석봉도, 문제의 조부장도, 아버지도, 그리고 나노.
"언뜻. 태어나서 처음으로
산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구나, 라는 생각을, 나는, 했다."
p.126~130 中
평범한 야구 팀 삼미의 가장 큰 실수는 프로의 세계에 뛰어드는 것이었다. 고교야구나 아마야구에 있었더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팀이 프로야구라는 -실로 냉엄하고, 강자만이 살아남고, 끝까지 책임을 다해야 하고, 그래서 아름답다고 하며, 물론 정식 명칭은 '프로페셔널'인 세계에 무턱대고 발을 들여놓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인간이 평범한 인생을 산다면, 그것이 비록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한 인생이라 해도 프로의 세계에서는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삶이 될 것이라 나는 생각했다.
큰일이었다. 세상은 이미 프로였고, 프로의 꼴찌는 확실히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프로야구 원년의 종합 팀 순위로 그것을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6위 삼미 슈퍼스타즈 : 평범한 삶
5위 롯데 자이언츠 : 꽤 노력한 삶
4위 해태 타이거즈 : 무진장 노력한 삶
3위 MBC 청룡 : 눈코 뜰 새 없이 노력한 삶
2위 삼성 라이온즈 : 지랄에 가까울 정도로 노력한 삶
1위 OB 베어스 : 결국 허리가 부러져 못 일어날 만큼 노력한 삶
아아, 실로 무서운 프로의 세계가 아닐 수 없다고 16살의 나는 생각했다. 그럼 평범한 삶보다 조금 못하거나 더 떨어지는 삶은 몇 위를 기록할 것인가? 몇 위라니? 그것은 야구로 치자면 방출이고, 삶으로 치자면 철거나 죽음이다. 그런 삶은 순위에 낄 자리가 없다. 평범한 삶을 살아도 눈에 흙을 뿌려야 할 만큼 치욕을 당하는 것이 프로의 세계니까.
1위 OB 베어스
2위 삼성 라이온즈
3위 MBC 청룡
4위 해태 타이거즈
5위 롯데 자이언츠
6위 삼미 슈퍼스타즈
아무리 봐도 3위와 4위가 그럭저럭 평범한 삶처럼 보이고 6위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최하위의 삶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프로의 세계다. 평범하게 살면 치욕을 겪고, 꽤 노력을 해도 부끄럽긴 마찬가지고, 무진장, 눈코 뜰 새 없이 노력해봐야 할 만큼 한 거고, 지랄에 가까운 노력을 해야 '좀 하는데'라는 소리를 듣고, 결국 허리가 부러져 못 일어날 만큼의 노력을 해야 '잘하는데'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꽤 이상한 일이긴 해도 원래 프로의 세계는 이런 것이라고 하니까.
결국 문제는 '평범'의 기준에 관한 것이다. 과연 어떤 것이 평범인가? '중산층' 이 파워풀한 단어는, 그 후 세상을 바꿔나가는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작용한다. 이 하나의 단어로 인해, 이제 확실히 도표의 3, 4위가 새로운 평범의 기준이 된 것이다. 무진장 노력하고, 눈코 뜰 새 없이 노력하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
"남들 사는 만큼 사는 거죠."
"그저 평범하게 살고 있습니다"
"더 열심히 해야죠."
라고 말하는 이상한 세상이 온 것이다.
그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상이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추어는 이미 숨을 거두었다. 나는 슈퍼맨이 아니었고, 렉스 루더와 같은 대악당도 되지 못했으며, 다른 무엇보다, 나는 아마추어였다. 즉
죽지 않은 게 다행이었던 것이다.
16살의 나는 결론을 내렸다. 그랬다. 소속이 문제였다. 소속이 인간의 삶을 바꾼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을 담은 소년이 왜 전철 안에서 조롱을 받는가?
삼미 슈퍼스타즈의 잠바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동창인 조부장에게 왜 굽실거려야 하는가.
삼류 대학을 나왔기 때문이다.
삼촌이 사는 남동구는 왜 개발이 되지 않는가?
소속구의 국회위원이 여당 소속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속이 인간의 삶을 바꾼다.
소속이 인간이 거주할 지층을 바꾸는 것이다.
p.141, 144, 146 中
일류대를 졸업한 사람들의 소속감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훨씬 상회한다. 아마 마음 같아선 아마 한복판에 '일류대'라는 문신이라도 파고 싶을 것이다.
좋게 말하자면 프라이드가 강하단 얘기인데 나쁘게 말하자면 겸손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들은 결코 진심으로 '한 수 배우겠습니다'라든지 '제가 많이 부족합니다'와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 이들은 인생에서 결코 겸손해야 할 필요가 없거나, 그럴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다. 사회적으로 보면 큰 병폐고, 한 인간으로서는 치명적인 결점이다.
'소속'의 슬픔이란 그런 것이다. 이른바 가장 우수하다는 평을 듣는 집단에서도 이 '소속'의 콤플렉스 앞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사실 그래서, 인간은 절대 평등할 수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왜?"
"글쎼, 그냥."
"뭐 어때? 어차피 졸업장만 따면 되잖아."
내가 원한 것은 바로 그 '소속감'이 아니었떤가. 학문의 성취나 이상의 실현 따위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물론 대학 생활을 마라톤에 비유한다면 자신에 대한 도전과 끝없는 성취를 목적으로 - 42km가 넘는 길고 긴 거리를 혼신의 힘을 다해 질주하는 인간도 있겠지만
그런 인간은 그런 인간이고.
p. 185
청춘은 고장난 탱크와 같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누구나 그런 모습으로
내일의 문 앞에 서 있었다.
p.203
제대를 하면서, 나는 '소속'의 고민과 비슷한 - 또 하나의 강박관념을 그곳에서 가지고 나왔다. 그것은 '계급'이었다. 세상은 수없이 많은 소속 안에서, 또 다시 여러 개의 계급으로 나뉘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삶은 여간해서 그 위치를 벗어나지 못한다.
p.228
지면 어때?
p.241 스텝 바이 스텝. 한 걸음씩 인생은 달라진다.
인생은 참으로 이상한 것이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들고, 쉽다고 생각하면 쉽다. 이혼을 하고 실직을 당한 그 시점에서부터, 나는 서서히 인생을 쉽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자 하나씩, 하나씩 할 일들이 생겨났다. 우선 그날 이후 나는 하릴없이 하늘을 쳐다보는 새로운 습관이 생겨났고, 어느새 산보를 하며 하늘을 즐기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일과과 되어버렸다. 그렇게 하늘을 즐겨가면서 나는 점점 낙천적인 인간으로 변해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세계는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구성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야 할 회사가 없었던 그해의 여름은 - 그 과정을 충분히 마무리지을 수 있을 만큼이나 길고 긴 것이었다.
요는 말이지. 어쩌다 프로가 되었나, 라는 것이야. 생각해봐, 우리는 원래 프로가 아니었어. 그런데 갑자기 모두 프로가 된 거야. 그 과정을 생각해보란 말이야. 물론 프로야구가 세상을 바꾸었단 얘기가 아냐. 요는, 프로야구를 통해 우리가 분명 속았다는 것이지.
속아?
그럼, 전부가 속았던 거야. '어린이에겐 꿈을! 젊은이에겐 낭만을!'이란 구호는 사실 '어린이에겐 경쟁을! 젊은이에겐 더 많은 일을!'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보면 돼. 우리도 마찬가지였지. 참으로 운 좋게 삼미 슈퍼스타즈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우리의 삶은 구원받지 못했을 거야. 삼미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와도 같은 존재지. 그리고 그 프로의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모든 아마추어들을 대표해 그 모진 핍박과 박해를 받았던 거야. 이제 세상을 박해하는 것은 총과 칼이 아니야. 바로 프로지! 그런 의미에서 만약 지금의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예수가 재림한다면 그것은 분명 삼미 슈퍼스타즈와 같은 모습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그건 뭐랄까, 솔직히.... 못해서 그랬던 게 아닐까?
너도 분명 기억하지? 82년 2월 7일 최초로 스프링 캠프 훈련을 실시하러 떠나던 삼미 슈퍼스타즈를 말이야. 6개 구단 중 유일하게, 삼미는 선수 전원이 정장을 차려입고 버스에 올랐던 것을. 생각해봐. 유니폼을 입고 버스에 올랐던 나머지 구단들의 목표는 뭐였찌?
우승.
맞았어. 그게 그들의 한결같은 목표였찌. 하지만 삼미의 목표는 다른 거였어. 기억나?
글쎄.
야구를 통한 자기 수양!
맞아, 기억나. 야구를 통한 자기 수양!
삼미는 이미 이 세계가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를 다 알고 있었던 거야.
한미 정상 외교의 뒷거래?
그래, 뉴스에 발표된 건 표면, 즉 껍데기에 불과해. 실제로 그때 거래되었던 건 놀란스(80년대의 여성 4인조 댄스 그룹, 'Sexy Music'이라는 단 한 곡의 히트곡을 보유하고 있다. 1982년 내한 공연을 펼쳤고, 유례없이 KBS가 공연 실황을 생중계했다.)와 프로야구였으니까.
놀란스와 프로야구?
당연하지. 그때나 지금이나 정권을 쥔 놈들의 생각은 뻔한 것이니까. 당시 놈들의 고민은 어떻게 더 많은 일을, 국민들에게 당연하게 시킬 수 있을까, 였거든. 마침 그 고민은 미국의 고민과도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었지. 미국의 주력 산업이 뭔가를 생각해봐. 그럼 답은 간단하니까.
자동차, 석유 ...... 이런 건가?
틀렸어. 그런 건 모두 껍데기에 불과하다니까. 미국의 주력 산업은 자본주의의 프랜차이즈야. 프랜차이즈! 알겠어? 그 일환으로, 또 마침 82년은 수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기도 해서 놀란스와 프로야구가 함께 거래된 것이었찌. 물론 처음엔 <섹스>와 <프로>를 함께 수입하라는 조언을 들었겠지? 물론 <섹스>는 양념이니까. 즉 <프로>를 더 잘 배양하기 위한 - 유산균 발효유로 치자면 올리고당과 같은 존재였지. 그런데 문제가 생긴 거야.
무슨 문제?
당시의 한국인들은 <프로>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고, <섹스>라는 말은 차마 부끄러워서 입에 올리지도 못했거든. 그래서 놀란스와 프로야구가 건너온거야. 선발대의 역할을 한 것이지.
하여간에 당시 정권은 이 세상을 <프로화>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 부었어. 그리고 그걸 눈치 챈 유일한 존재가 바로 삼미 슈퍼스타즈였지. 삼미는 이미 스프링 캠프로 향하던 그 순간 이 야구가, 이 세상이, 모두의 삶이 어떤 판도로 흘러갈 것인가를 전부 예측하고 있었던 거야.
프로!
놈들은(당시 정권) 계속해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프로의 슬로건들을 만들어 나갔지.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프로는 끝까지 책임을 진다, 프로의 세계는 약육강식이다, 프로의 세계에선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프로는 약육강식의 세계이다. 프로는 쉬지 않는다. 자기 관리는 프로의 기본이다. 프로는 끝없이 자신을 개발한다. 프로는 능력으로 말한다. 프로는 잠들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프로만이 살아남는다.
단지 한 가지! 삼미 슈퍼스타즈만이 그 프로의 드라마에 찬물을 끼얹고 있었지. 특정 팀 상대 시즌 전패를 하지 않나, 최대 점수 차 역전패를 일궈내지 않나, 하여간에 프로에게도 저런 구석이 있구나, 라는 - 놈들이 가장 우려했떤 여파를 국민들에게 마구 끼쳤던 거야.
삼미는 결국 끝까지 걸어갔고, 그 리그의 한복판에서 비로소 <자신의 야구>를 완성했으니까.
삼미 슈퍼스타즈의 야구?
그럼, 그게 핵심이야. 그해의 리그에서 삼미 슈퍼스타즈가 <자신의 야구>를 완성하지 못했다면 아마 우리는 구원받지 못했을 거야.
결국 놈들은(당시 정권) 삼미의 해체를 결심하기에 이르지. 모기업 삼미의 부도를 계획하고 나아가 신생 그룹이었던 청보를 협박해 슈퍼스타즈를 인수하게끔 만든 거야. 결국 삼미는 그 리그를 끝으로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었지. 하지만 삼미는 이미 자신의 할 일을 모두 완수했고, 그 아름다웠떤 플레이는 모두의 가슴 속에 남게 되었지.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후에도 그 말씀이 성경으로 모두에게 남아 있듯 말이야.
그 <자신의 야구>가 뭔데?
그건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야. 그것이 바로 삼미가 완성한 <자신의 야구>지. 우승을 목표로 한 다른 팀들로선 절대 완성할 수 없는 - 끊임없고 부단한 <야구를 통한 자기 수양>의 결과야.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를 견지하는 것은 실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야. 너도 알다시피 모든 선수들의 가슴 속엔 저마다 빛나는 자존심이란 것이 있게 마련이니까.
p.257
조성훈은 또다시 일자리를 얻었다. 이번에는 우유 배달이었고, 역시나 벼룩시장을 통해서였다. 하루 3시간만 일하고, 굶어죽지 않고, 나머지 21시간은 내 것이다- 가 신문 배달 때와 하나 다름없는 놈의 자랑이었다. 그리고 나는 -퇴직금을 까먹으며 그냥 놀기로 했다. 4년 내내 미친놈처럼 일을 했고, 그 퇴직금으로 밥을 먹지만, 하루 24시간이 내것이다- 가 예쩐이라면 상상할 수 없었던 나의 자랑이었다.
p.262
(IMF 시절, 실업된 주인공)
실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 죽은 것은 회사를 그만두면 죽을 줄 알았던 과거의 나뿐이다.
쉬지 않는다.
쉬는 법이 없다.
쉴 줄 모른다.
그렇게 길러져왔기 떄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기른 자식들이 역시나 그들의 뒤를 잇는다
쉬지 않을 수록
쉬는 법이 없을 수록
쉴 줄 모를 수록
훌륭히, 잘 컸다는 얘기를 들을 것이다.
p.270
우리가 갈 길은 멀 수도 있고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끝까지 함꼐 가셔도, 또 그 길의 중간에서 언제든지 포기하셔도 좋습니다. 모든 것은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저느 이 팬클럽이 가능한 오래 유지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결국 언젠가는, 이 팬클럽도 사라질 테니까요. 이제 그 누구도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 야구의 의미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살아남을 수 없기 떄문입니다. 아니, 모두가 그렇게 믿고 있기 떄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팬클럽은 분명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될 것입니다.
p.278
그저 달리기만 하기에는 우리의 삶도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인생의 숙제는 따로 있었다. 나는 비로소 그 숙제가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고, 남아 있는 내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지를 희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공을 치고 던질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고, 어떤 야구를 할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다.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