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58 자존감은 우리의 혈통과 배경, 성취, 우주적 또는 영원한 의미, 타인에게 사랑받는 정도에서 우리가 자신을 보는 방식에 기초하는 것으로 보인다.
p.76 좋지만 과장되지 않은 자기 평가야말로 원만한 성격 기능의 특징인 듯 보인다. 덧붙여, 이런 좋은 판단은 외적 성취나 타인의 인정에 너무 의존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긍정적인 만큼 탄탄해야 한다. 남을 소중히 여기려면 먼저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만 할 것이다.
p.92 죄는 내 길로 가고, 내 일을 하고, 내 기준대로 판단하려는 마음이다(창 3장)
그러므로 매사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봄으로써 이러한 인간 중심의 시각에 도전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p.97 죄의 핵심 결과는 신체적, 인격적, 도덕적 차원에서 하나님과의 분리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삶을 얻기 위해 삶을 버리라고 말한다.(눅 17:33) 우리는 종의 도, 겸손, 순종 그리고 내 것이 아닌 뜻으로 부름받았다. 우리는 자기 운명을 지배하려는 시도를 그만두고 대신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맡겨야 한다.(눅 22:42)
p.99 우리는 자신의 타락한 본성적 자유, 자신이 모르고 있을지라도 죄로 물들고 오염된 자유를 버려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때만 완전한 자유가 있고, 하나님의 종이 될 때만 우리는 자유로운 사람이 된다.
p.100 우리는 자신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롬 6:11)로 여겨야 한다.
p.103 복음의 핵심에는, 하나님의 기준은 마음대로 버릴 수 있는 인간의 소소한 발명품이 아니라는 통찰이 담겨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규칙을 원래대로 지킬 때 자신과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확신 있게 말할 수 있다.
p.104 하나님은 세상이 실패자라고 거부하고 멸시한 자들을 택하셨다.(벧전 2:6-7)
p.111 십자가는 죄의 심각성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죄에 관여하시고 궁극적으로는 죄를 멸하시려는 하나님의 뜻과 능력을 보여 준다. 십자가에서 우리는 실제 죄-우리 죄-에 대한 실제 용서를 본다.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었고 반응은 우리 몫이다. 우리가 움직일 수 있도록 하나님이 먼저 움직이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
p.114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의 객관적 기초를 쌓는다. (대표, 참여, 대리의 개념)
자존감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이루셨기에 - 그것도 아주 훌륭하게 - 우리는 안심할 수 있다.
p.120 죄를 인식한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삶에 죄의 존재가 계속된다는 이유로 자신을 경멸하거나 미워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죄를 범할 때 죄의식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죄를 자백하고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자신이 죄인인 것에 대해 죄책을 느낄 필요가 없다. 복음은 우리가 '용서받은 죄인'임을 선포한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죄의식을 품는 것은 자신이 용서받았다는 중대한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p.123 우리는 믿음 '때문에'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의롭게 된다. 칭의의 기초는 우리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역이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사역이 우리 삶에 적용되는 방편이다. 따라서 믿음 자체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칭의의 수혜는 그 외적 기초도 내적 방편도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믿음이란 우리가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 성취하시는 것이다.
p.124 그리스도인에게 긍정적 자존감이란, 자신이 하나님과 바로 되었고 그리하여 자기 자신과도 바로 되었다는 인식의 심리적 증표로 봐도 무난하다.
p.125 칭의는 하나님이 보시는 우리의 상태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모든 타자 중에 가장 중요한 타자인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보시는지에 관한 것이다. '의'로 번역되는 헬라어 단어는 단순히 도덕적 개념이 아니다. 거기에는 그것을 훨씬 뛰어넘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 것, 하나님께 가치 있게 여겨지는 것' 등 기독교의 개념이 들어있다. 따라서 신자들은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지만(그것은 옳다!), 칭의로 인해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기도 하다.
죄의 존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우리 신분을 무효화하지 않는다.
칭의 교리는 우리로 불완전함과 죄를 인정하는 동시에, 우리의 초라한 본성을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킬 하나님의 뜻과 능력 안에서 기뻐하게 한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부여하신 신분은 장차 그분의 은혜로 재창조될 우리 모습에 대한 그분의 비전과 의지와 약속이 반영된 것이다.
p.141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안다는 것은 곧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안다는 뜻이어야 한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거기에는 전혀 모순이 없다. 하나님은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거기에는 망상이나 기만이 없다.
하나님은 우리 모습을 정확히 아신다. 그분은 우리 존재의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신다. 그분은 우리가 죄인임을 아시면서도 우리를 사랑하신다.(시 139:1-4)
우리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사랑하시고 귀히 보시는 죄인들인 것이다.
p.154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상황에 처하든 하나님이 그 상황에서 자신을 쓰실 것을 알기에 자긍심과 위안을 얻을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어떤 일이 벌어지든 하나님이 우리를 쓰실 것이라는 확고부동한 확신이다.
자신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과 그분이 장차 빚으시려는 내 모습을 수용하는 것이다.
p.155 우리가 할 일은 '남들이' 무슨 은사를 받았는지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신 은사를 발견하는 것이다.
겸손이란 나에 대한 평가를 낮추는 문제가 아니라 남에 대한 평가를 높이는 문제다.
p.161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은 민족적 특권, 가문의 이름, 개인의 성취에 근거하지 않는다.
그 근거는 오로지 전적으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해주신 일에만 있다. 우리의 자존감은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자력으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성취하시는 것이다.
p.164 우리의 자존감은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느냐에 근거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하시는 지위가 세상이 줄 수 있는 그 무엇보다 훨씬 존중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발견한다는 것은 그분을 기뻐하는 것이고 그분이 소중히 여기시는 것만 존중하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적인 개념의 자존감과 자기 가치의 개념들을 값진 진주의 빛에 완전히 가리운 열등하고 하찮은 것으로 일축하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 한 분만이 그분의 이름으로 부름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긍심을 주신다. 그리스도인의 궁극적 특권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을 아는' 것이다.